"이러다 아 인생 조지겠다!"

아 = 아이의 부산 사투리

by 천소희


우리가 살게 된 바탐방에는

마땅히 다닐 학교가 없었다.


그곳에 장기적으로 살고 있던 한국 어린이는

우리 삼 남매뿐.


현지인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국제학교는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

현지 공립학교에 들어가는 것.


바탐방으로 오기 전,

어머니께서 보여주셨던 그 학교보다

훨씬 더 외곽에 있는 초등학교에

2학년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만 13살이었다.


멀대같이 커버린 키,

어린아이들 틈에서 나 혼자 유난히 컸다.


책상과 의자가 붙어 있었고,

내 다리가 들어가기엔 턱없이 작았다.


나는 몸을 비틀어 겨우 앉았고

1학년으로 입학한 덩치 큰 남동생은

제대로 앉을 수도 없었다.


캄보디아의 찜통 같은 더위,

전기도 없는 교실,

젖어버린 교복.


그런 우리를 구경하려

동네사람들이 교실로 몰려들었다.


교실 창 밖에 빼곡히 선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동물원이란 게 이런 기분일까?"


동생은 그날 이후로

대인공포증을 앓았다.



그곳의 아이들은,

성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남녀가 성관계하는 그림을 그려서

장난처럼 나에게 들이밀었다.


"너 이거 알아?"


낄낄거리며 물어보던 얼굴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캄보디아어로 성희롱하는 농담을 던졌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무시하거나,

화를 내거나,

도망쳤다.


그러나 그 모습마저도

그들에게는 웃음거리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안에서 기쁨을 찾으려 애썼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께서

언제나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비가 오면 학교를 안 가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학교가 오전에만 하고 끝나니 얼마나 좋은가.

사람들이 나 보러 오고, 나 완전 연예인이네 연예인!


억지로라도 좋은 것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동생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결국 우리는

1년 2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무렵,

어머니께서 바탐방에 고등학생 선교사 자녀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선교사님께 부탁드렸다.


"그 친구가 우리 아이들

수학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우리는 집에서

캄보디아어, 중국어, 수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머지 시간은

책을 읽고,

피아노를 치고,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며 보냈다.


그렇게 우리 삼 남매와

그 오빠의 수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1학년 연말 무렵

나는 여전히 초등학교 5학년 수학을 배우고 있었다.


문제는

삼각형의 넓이였다.


공식을 외우라는 답 밖에 들을 수 없었지만,

나는 왜 그렇게 계산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걸 왜 이렇게 구해야 해요?"

"누가 이렇게 정한 거예요?"


물어볼 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나도 그건 잘 몰라, 이건 그냥 외워야 해."


하지만

나는 '그냥 외우는 것'이 되지 않는 아이였다.


쌓이고 쌓이던 답답함이

어느 날, 터져버렸다.


"하나님, 저 정말 모르겠어요."

"곧 중학교 2학년이 되는데 초등학교 5학년 수학도 몰라요. 저... 어떡하죠..."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간절한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나에겐 학교가 필요해."


나는 부모님께 달려가서 외쳤다.


"이러다 아 인생 조지겠다!"


늘 존댓말을 쓰던 내가,

처음으로 외친 간절함이었다.


"저 이제 학교 가고 싶어요!"




2009년 2월

동생이 말했다.


"한국에 있는 대안학교에 가고 싶어요."


동생은

마음속 깊은 상처로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나와 동생, 둘 다 입학 원서를 넣으셨다.


하지만 얼마 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은 첫째만 받을 수 있습니다."


학교의 원칙이었다.


형제가 함께 지원하면,

자리가 없을 시

형을 먼저 받는다는 원칙.


동생의 계획은 무너졌다.


하나님께서는,

동생의 발걸음을 붙잡으셨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동생은 말했다.


"누나를 먼저 보내시려고 하나님이 그러신 것 같아."


동생은 캄보디아에 남아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고,

긴 시간 자신을 괴롭히던 어려움들과

천천히 이겨내는 훈련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몰랐다.


흐르는 눈물과 걱정을 누르며

나를 떠나보내신 부모님의 마음을


그날부터 나도 모르게

독립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깊은 외로움도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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