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 삶

풍토병과의 싸움

by 천소희


말라리아, 뎅기열, 뜩씨쯔응, 기생충…

캄보디아에서 살아가며 지나쳐야 했던 병들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 병들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살아 있었다.


캄보디아의 병원은

‘발가락 염증이 생겨 갔다가 발가락을 자르고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의료 수준이 낮았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갈 수 없었고, 가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약처방과

기도와 기다림,

그것이 우리가 병을 견디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때로는 아버지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에피소드 1. 뜨거운 열, 아낙필락시스


어느 날, 내 열이 40도를 넘었다.

놀란 아버지는 뎅기열을 의심하며

브루펜과 타이레놀을 각각 두 배 용량으로 동시에 먹이셨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약을 먹고 5분 뒤,

열은 거짓말처럼 떨어졌다.

그러나 곧 왼쪽 눈이 심하게 붓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터질 것 같았다.

흰자 위에 우물처럼 부풀어 오른 것들이 겁을 더했다.


의사였던 선교사님들의 조언에 따라

소금물 적신 거즈를 대며 기도하는 4일이 흘렀다.

다행히, 붓기는 가라앉았다.


한국에 방문해 들은 진단은

“아낙필락시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었어요.”


그날,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셨다.




에피소드 2. 손 안의 지렁이


어느 날 저녁, 막내가 손을 씻다 말했다.


“엄마, 손이 이상해요.”


손가락 곳곳에 지렁이처럼 늘어선 투명한 알들.

무슨 병인지 몰라 떨리는 마음 기도로 누르며

프놈펜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의사 선생님 조차도 무슨 병인지 몰라

태국으로 가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때,

바닷가 놀러갔다가

발에 있는 상처를 통해 기생충이 감염 되었던

한 선교사님의 사례가 생각 나신 아버지께서

의사선생님께 한 번 다시 찾아봐달라 부탁드렸다.


그러자 ‘피부 기생충 감염’일 수 있으니

약을 처방해줘보겠다고 했다.


처방 받은 약은 구충제 세 알.

우리 약장에 가득했던, 그 흔한 약.


그 약을 먹고서야 손에 계속 퍼져나가던 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에피소드 3. 눈이 아닌, 믿음으로 보는 사람


어머니는 예쁘고 소녀 같으면서도

세상 누구보다 단단한 분이었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떠오르는 한 문장.

“기도하고, 순종하는 사람.”


그런데 캄보디아의 강한 햇빛은

어머니의 한쪽 눈을 앗아갔다.

까만 동자가 점점 하얗게 변해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진단은

바이러스로 인한 각막홍채유착증후군

희귀병이었다.

각막이식 수술을 해도, 4년 뒤엔 재발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필요하면 낫게 하시겠지. 아니어도 괜찮아.

눈 감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건가 보다.”


그날,

나는 고난이 올 때

어떤 마음과 태도로 서야 하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어머니는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계신다.


눈의 안압이 오르지 않도록 늘 조심하시고,

사진을 찍는 것조차 꺼리시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내 가슴 한켠이 저릿하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웃으며 기도와 순종으로 살아내고 계신다.




그 외에도 수많은 병들,

수많은 사고들,

죽을 뻔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함께 다시 그 땅으로 돌아가는 일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 고비마다

살려주시고 지켜주신 은혜를 기억하기에

나는 돌아올 수 있었다.


죽을 고비 속에서도 순종하며 웃으셨던

부모님의 태도,

하나님의 손길에 대해 의심 없이 말하던 그 시선을 보며


나도 그렇게,

살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마 그 수많은 일을 지나오며

내가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사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어머니의 살아내신 모습에

나는 발끝도 따라가기 어렵지만,


믿음의 복을 자손의 세대에 흘려보내주는

우리 어머니 같은 엄마가 되어가고 싶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어머니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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