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우유와 환승표 한 장

열다섯, 출국장에 남긴 눈물

by 천소희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나는 가방을 껴안은 채

아버지의 손에서 건네받은

종이 한 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베트남을 경유해서 한국까지 가는 방법.

아빠가 직접 손으로 그려준 그림이었다.

비행편명, 터미널 위치, 환승 시간까지.

꼼꼼하게 써 내려간 작은 종이 한 장.


그 위엔 단순한 안내만 있는 게 아니었다.

처음 딸을 혼자 보내는 아빠의 두려움,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쉽게 표현하지 못한 사랑까지.

그 모든 감정이 스며 있었다.


그 종이를 받아 든 순간,

뭔지 모를 감정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


눈물이 터졌다.

쏟아졌다.


“소희야, 정신 차려야 해.

안 그러면 국제미아 된다!”


아빠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말은 결국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 아빠, 무서워요.”


정말 무서웠다.


사람들로 가득한 공항,

밤비행기,

낯선 베트남 공항에서 3~5시간 대기,

한 번도 6시 이후에 밖에 나가본 적 없던 내가

낯선 언어 속에 혼자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


게다가,

남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치는 것조차

숨이 막히고 손이 떨리는 일이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완전히 벗어난 아이가 되었다.


누군가에겐

그저 ‘혼자 비행기 한 번 타는 일’ 일지 모르지만,

그 순간의 나는

온몸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공항 한복판에서,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 울음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었다.

내 안에 쌓여 있던 모든 감정이

그 자리에서 터져 나온 거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출국장 앞에서 나는

엄마, 아빠, 동생들을 마지막으로 바라봤다.


계속해서 손을 흔들었다.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손짓이 멈추면

정말로 멀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게 ‘첫 독립’이라는 것도,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는 순간이라는 것도

그땐 아무도 몰랐다.


그저,

작고 여린 딸아이 하나가

두려움과 그리움을 꾹 눌러 안은 채

무작정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흐릿해진 공항의 모습이

창밖으로 점처럼 사라질 때까지,

나는 끝내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베트남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여전히 울다 멈춘 얼굴로

낯선 공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사람들 틈에 섞여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을 때,

어떤 한국 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 사람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선교사님이셨다.


“혼자 울고 있어서,

처음엔 캄보디아 아이인 줄 알았어요.

근데 손에 한국 여권이 들려 있더라고요.”


그분은 나를 카페로 데려가

초코우유를 사주고,

말도 없이 조용히 곁에 있어주셨다.


비행기 시간이 될 때까지,

그분은 그 낯선 공항에서

내 작은 보호자처럼

내 옆을 지켜주었다.


그건 단순한 친절이 아니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이 내게 보내주신 손길이었다.


그 이후로도,

매번 경유 비행을 할 때마다

각기 다른 선교사님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혼자 비행기를 탔지만,

진짜 혼자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누군가를 통해 나를 지키고 계셨다.


공항 한가운데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열네 살의 나에게

작은 초코우유 한 잔으로 건네진 사랑은

잊을 수 없는 위로였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 안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던 마음이

처음으로 따뜻한 숨을 쉬었다.


“하나님, 정말 저를 혼자 두지 않으셨군요.”


그 고백이,

어린 나에게는 설명할 수 없이 벅찬 감격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울 수 없었다.


내 안의 눈물은

그날 한순간에 모두 쏟아져버렸고,

그 자리에 남겨진 건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나였다.


감정은 멈췄고,

외로움은 자라났다.


사람들은 내가 잘 지내는 줄 알았다.

늘 밝고 단단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실은,

나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아무도 몰랐다.

나조차도.


또한 그 외로움이 언젠가 나를

다시 하나님께로 이끌게 될 줄은

그땐 몰랐다.








※ 이 글은, 감정이 멈추고 외로움이 시작된 어느 날의 이야기입니다. 회복은 오래 뒤, 열 해가 지나서야 시작되었습니다.


그 여정은,

이 시리즈가 끝난 후

다른 이야기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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