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믿음 너머에서
대안학교에서 보낸 1년 반의 시간.
때로는 끝도 없이 즐거웠고,
때로는 가슴 아리게 외로웠다.
어떤 날은 금빛 찬란했고,
어떤 날은 사무치게 슬펐다.
그 모든 시간이 사춘기였다.
대안학교에서 1년 반,
그리고 이후 큰 외삼촌 댁에서 1년.
그 시간 동안 나는 그동안 놓쳤던 공부를 따라잡았고,
그 후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갔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공부의 기회를 준 그 시간은
내게 너무도 고마운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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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 돌아온 나는
현지 대학 진학을 준비하며
프놈펜의 한 선교사님 댁에 머물렀다.
대학의 언어 훈련 코스를 들으며
1년 과정을 6개월 만에 마무리하던 시기였다.
그 선교사님은 매일 저녁 기도회를 가셨고
나도 그 자리에 꼭 함께 데려가셨다.
늘 똑같은 찬양,
“왕이신 나의 하나님.”
악기 하나 없이 목소리로만 드리던 찬양.
그 뒤엔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지는 간절한 기도.
어느 날, 피곤하다는 핑계로 쉬겠다고 말했을 때
선교사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게을리하지 말라 하신다.”
그 말에 나는 입술을 다물고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날,
기도 중에 내 눈앞에
캄보디아 지도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날 이후,
나는 캄보디아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정말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땅이었지만
어쩌면 그날,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와야 할 이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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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을 그렇게 기도와 함께 보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부모님의 안식년으로 한국에 갔다.
그곳에서 우연히 누군가의 추천으로
총신대학교 입학을 고민하게 되었다.
신학과, 기독교교육과, 유아교육과.
그중에서도
가정과 교회, 세상을 이끄는 기초라 여겨지는
기독교교육과가 내 마음을 붙잡았다.
입시는 0.5:1
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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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입학금이 문제였다.
대략 450만 원.
우리에겐 지금 써야 할 생활비 외엔
단 한 푼도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느 교회에서, 또 다른 교회에서,
어떤 분이, 또 다른 누군가가
조금씩 모아 보내주신 손길이 이어졌고
마지막 75만 원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의 마지막 생활비,
모두의 용돈까지 탈탈 털었다.
정말 딱,
75만 원.
입학금 전액이 채워졌다.
입학금 송금 직후,
우리는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이제는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셨듯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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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저녁.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우리가 지내던 선교관 교회의 사모님.
떡과 생선이 담긴 큰 쇼핑백을 들고
아무 말 없이 놓고 가셨다.
“하나님… 이렇게 채우시는군요.”
우리는 그 쇼핑백을 들고 들어와
싱크대에 생선을 쏟아부었다.
빨간색 물고기가 씻어도 씻어도 계속 나오는 게
마치 오병이어를 직접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날의 짜릿함.
지금도 생생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쁨,
세상의 어떤 감동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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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설날이었다.
외갓집에 인사드리러 갔다가
외할아버지께 5만 원권 두 장을 받았다.
대학 오티(OT)를 포기하려던 내게
하나님이 주신 기차표 값이라 생각하며
기뻐하는 마음으로 교회로 향했다.
그런데,
입구 헌금함 앞에서 순간 멈칫했다.
내 손엔 오직 오만 원권 두 장뿐.
주머니엔 천 원도 없었다.
주님께 말했다.
“하나님, 지금 천 원이 없어요.
이 돈은 기차표 값으로 주신 거 아닌가요?”
그때 마음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희야, 헌금은 금액이 아니라 마음이란다.
네가 가진 것으로, 너의 마음을 내게 주렴.”
순간,
지금껏 불안해하며
은혜를 잊고 있었던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그렇다면, 주님.
저의 전부를 드립니다.”
그렇게
5만 원은 주일헌금으로,
5만 원은 감사헌금으로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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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아버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신부산교회에서 대외장학금 장학생으로 소희를 선정했습니다.”
그 소식에 우리는 넋을 잃었다.
내가 신청하지도 않았던 장학금으로
하나님께서 내가 드린 10만 원의 마음에
10배를 넘는 은혜로 응답하신 것이다.
생활비, 동생들에게 빌렸던 돈,
기차표와 경비까지.
하나님께서 모두 채워주셨다.
나는 다른 말없이,
그저 “하나님… 하나님…”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 알게 되었다.
부모님을 통해 만났던 하나님이 아니라
내게 직접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이제는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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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너와.”
이 한마디가
나의 십 대의 그 모든 여정을 마무리하는
주님의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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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혼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물론 이 깨달음 하나로
모든 외로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길의 시작을 배웠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하며 사는 삶의
짜릿함을 경험했다.
하나님은
이제 곧 진짜 독립을 앞둔 내게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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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너와.
그렇게,
나는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내 삶의 진짜 첫 페이지를
비로소 넘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