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과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우울은 조용히 온다. 예고도 없이, 이유도 없이.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몸이 이상하게 무겁고,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세상이 한 톤 낮은 색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냥 피곤한 거겠지, 하고 넘긴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몇 주가 지나도 그 무게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서야 깨닫는다.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구나.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피하거나.
싸우는 쪽을 택한 사람들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소진되는 일인지를. 억지로 일어나고, 억지로 웃고, 억지로 괜찮은 척한다. 주변에서는 말한다.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울을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것이 사라지지 않으면 패배가 된다. 그리고 패배감은 우울 위에 자책을 덧씌운다. 우울해서 힘든 게 아니라, 우울한 자신이 한심해서 더 힘들어진다. 싸움의 언어는 때로 사람을 두 배로 지치게 만든다.
도망치는 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술을 마시거나, 일에 파묻히거나, 끝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내린다. 그 순간만큼은 잊을 수 있다. 감각이 둔해지고, 머릿속이 잠시 조용해진다. 하지만 술이 깨고, 일이 끝나고, 화면을 내려놓으면 우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도망쳐도 집은 그대로다. 오히려 피하면 피할수록 우울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외면당한 것들은 대개 그렇게 자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한동안 이 질문을 붙들고 살았다.
바다에 들어가 본 사람은 안다. 파도를 막으려 하면 오히려 더 세게 맞는다. 온몸으로 버티면 쓸려가고, 등을 돌려 달아나면 뒤통수를 맞는다. 파도는 없앨 수 없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싫다고 해서 멈추는 것도 아니다. 파도는 그냥 온다. 언제나, 계속.
나는 오랫동안 파도와 싸웠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오랫동안 파도를 피해 달아났다. 어느 쪽도 소용없었다. 싸우면 지쳤고, 도망치면 돌아와야 했다. 파도는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파도에 휩쓸리느니, 올라타기로 했다.
이 문장이 처음 떠올랐을 때, 묘하게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었다. 싸우지 않아도 된다.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 파도의 흐름을 읽고, 몸의 균형을 잡고, 그것과 함께 움직이는 것. 파도를 이기려는 게 아니라 파도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서퍼가 하는 일이다.
서퍼는 파도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파도를 만만하게 보지도 않는다. 그는 파도의 성질을 공부하고, 수없이 떨어지고, 그러면서 조금씩 그 위에 서는 법을 익힌다. 파도가 사라지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파도가 있는 바다에서, 파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우울도 그렇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조금씩 믿는다.
싸우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지금 이것이 내 안에 있구나, 하고 인식하면서 그것과 어떻게 함께 움직일지를 생각하는 것. 우울을 없애겠다는 욕심을 내려놓는 대신, 이것과 어떻게 살아갈지를 묻는 것. 그것은 체념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고, 동시에 가장 능동적인 태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수용이라고 부른다. 감정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그것이 흘러가도록 두는 것. 우울은 영원하지 않다. 파도처럼 왔다가 간다. 그 파도를 부수려 하거나 파도가 없는 곳으로 달아나려 하기보다, 그 위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물론 올라타는 것도 쉽지 않다. 균형을 잃고 떨어질 때도 있고, 예상보다 훨씬 큰 파도가 덮칠 때도 있다. 어떤 날은 올라타기는커녕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끝나기도 한다. 그런 날은 그냥 그런 날이다. 잘 못 탄 날이 있어야 더 잘 타는 날도 온다. 서퍼도 매번 성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제대로 올라타 본 사람은 안다. 파도 위에서 보이는 풍경이, 물속에서 버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같은 파도인데, 같은 바다인데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우울과 싸울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나는 이제 그 질문 자체를 바꾸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그 위에 올라설 수 있는가, 로. 파도를 없애달라고 빌지 않는다. 다만 오늘도 균형을 잃지 않기를, 혹은 잃더라도 다시 올라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