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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끄로 Jan 22. 2024

이게 바로 츤데레?

이르쿠츠크

초초에게

드디어 내려서 씻었어. 너무 개운하다. 2차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는 뽀송뽀송함을 유지하고 싶어. 머리 안 감고 안 씻는 것이 생각보다 답답하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1차가 끝났고, 이제 곧 모스크바행 횡단열차에 탑승해. 막상 다시 탈 생각을 하니 조금은 막막해. 이렇게 끊어서 타기를 참 잘한 것 같아. 두 번째 탈 때에는 더욱더 만반의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마음의 준비도 포함해서 말이야. 아무 생각 없는 나를 이끌고 이르쿠츠크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지금까지 건강했던 것처럼 남은 여행도 건강히 마치기를 바란다. 


 다시 3일간의 열차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하니 두렵지만, 지금까지 잘 해온 만큼 또 잘하겠지. 복도 자리는 어떨지 잘 모르겠어. 우리 둘이 더 오순도순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둘이 계속 붙어있다가 혼자 대합실에서 새벽 열차를 기다리는 순간이 참 무섭네. 내가 먼저 씻는 동안 초초는 어땠을지 모르겠다. 이 짧은 시간이 무서우면 앞으로 혼자 여행은 어떡하나 싶어. 

 이르쿠츠크에서의 하루는 어땠니? 나는 참 좋았어.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서 이것저것 많이 했잖아. 그중에서도 바이칼 호수에 닿았던 게 좋았어. 바다 같더라. 리스트 비얀카에는 사람도 많지 않았어. 찰박 물 부딪히는 소리, 사악 부는 바람 소리, 멀리 보이는 설산, 푸른 하늘, 물 냄새, 햇빛 냄새. 평화로웠어. 하늘에 구름도 예쁘게 걸려있고 햇빛도 따뜻했어. 가만히 앉아서 모든 걸 느낀 그 순간이 좋았어. 


 아침에는 해외에서 처음으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 먹었지. 영어로 주문하는 게 걱정됐는데, 어찌어찌 팔뚝만 한 샌드위치를 사서 든든하게 배를 채웠어. 각 나라마다 재료가 조금씩 다른 줄 몰랐어. 러시아에 버섯이 많이 나는 지, 버섯을 넣어주는 게 신기했어. 리스트 비얀카에서 먹은 음식들도 신기했어. 러시아 꼬치구이인 ‘샤슬릭’이랑 ‘오물’이라는 생선을 골라 먹었잖아. 이름만 생소하고 아는 맛이었어. 다만, 샤슬릭은 엄청 짰지. ‘오물’은 연어 같은 생선이었고. 햇살이 좋아서 야외에 앉아서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


리스트 비얀카에 한국인은 초초 너랑 나 둘 뿐이었어. 동양인 여자애 둘이 그곳에 있는 게 신기했나? 이르쿠츠크로 돌아오는 버스, 내 옆에 앉으신 할아버지가 앙카라 강, 스톰 샤먼? (사실 나도 뭔지 잘 모르겠어)을 이야기하며 설명해 주셨는데, 이곳이 앙카라 강과 무슨 강이 만나는 곳이며, 바이칼 호수가 아니라는 설명을 하셨어.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을까? 검색해도 안 나와. 근데 내가 잘 못 알아듣는데도 열심히 설명하셨어. 알아들은 건 없었는데, 그냥 열심히 설명해주시려 하는 마음이 따뜻했어. 싫지 않았어. 여행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 낭만 아닐까.

 이르쿠츠크로 돌아와서 카쟌 성당에 갔잖아. 성당마다 다른 모습, 비슷한 경건함이 참 좋아. 카쟌 성당은 내가 본 성당 중 가장 알록달록했고, 역시나 비슷한 경건함을 가졌어. 또, 여느 성당과 비슷한 그 냄새. 차가운 성당 특유의 냄새가 아직도 코 끝에 선명해. 신을 믿지 않지만, 그 순간 짧게 기도도 했어. 기도보다는 다짐에 가깝겠지. 너는 그곳에서 뭔가 기도했거나, 다짐한 게 있니?

 이르쿠츠크의 중앙 시장은 보통의 시장이었어. 어느 나라를 가든 시장의 모습은 비슷한가 봐. 그래서 내가 시장을 좋아하나? 여행을 가면 꼭 시장을 가거든. 묘하게 편안한 느낌이 들어. 낯선 여행지에서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지.’하고 느끼면, 마음이 놓이나 봐. 오늘 우리는 이 낯선 러시아의 보통의 시장에서 체리랑 토마토를 샀어. 우리가 전혀 알아듣지 못함에도 러시아어로 와다다 말하는 시장 상인들이 인상적이었어. 뭐라도 더 팔려고 그랬던 걸까, 더 좋은 걸 알려주려고 그랬던 걸까. 뭐가 됐든,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한 아름 안았어.

 오늘의 여행에서 아쉬웠던 건 원래 먹고 싶었던 고려식당의 국시를 먹지 못한 거야. 하필 오늘 문을 닫다니. 대안책으로 방문한 식당 <킴치>에서는 우리가 주문한 메뉴만 엄청 늦게 나왔어. 화날 정도로. 괜히 한식을 고집했나 봐. 음식 기다리느라 숙소에도 늦게 갔어. 우리가 머물렀던 호스텔 주인 할아버지는 8시까지 온다던 동양인 소녀들이 오지 않아 걱정이 됐나 봐. 우리가 도착했을 때 8pm!! 이라며 화를 내셨잖아. 나갈 때 까지도 따라 나와서 택시도 확인해 주고, 화내는 모습에 놀랐지만 우리를 걱정해 주시는 모습이 찡했어. 이게 바로 츤데레지.


 일주일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한 러시아는 따뜻했어. 하지만 도시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낙후했어. 아직 수도까지 가지 못해서 그럴까? 근데 여기서 느껴지는 그 삭막함이 나쁘지 않게 느껴져. 이 사이에 있는 따뜻한 사람들과 여러 빛깔로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찾아봤어. 남은 여행동안 불만은 미뤄두고 좋은 것만 찾아보려고. 함께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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