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여행지들
서울로 상경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아침 8시 25분 내지는 오후 6시 25분에 환승역을 지나는 지하철을 타봐야한다고. 그러면 비로소 내가 서울에 왔구나 실감이 난다고.
그래도 콩나물 시루에 겨우 비집고 들어가 한 자리 꿰차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일단 몸을 구겨넣고 나면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정착역만을 겨우 살피며 눈을 내리깔고 버텨낸다.
손을 들 수도 없을만큼 압축돼버린 어느 날엔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옆 사람이 보는 숏츠를 같이 보았다. ‘알고리즘이 비슷하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생각하며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용산역을 지나 한강을 건너며 빨갛게 타들어가는 노을이 지는 노들섬을 마주한다. 강에 비친 노을이 붉게 퍼지는 것을 보며 잠시나마 하루의 피로가 희석되는 것 같았다. 비로소 내가 서울에 왔구나 느낀다.
서울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자리잡아 생산하고 소비되기위해 기름칠을 해대면서도 가끔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도 빌딩도 소음도 없는 곳으로. 사람에 질려서 내지는 소음이 싫어서는 아니다. 그저 내려놓고 싶을때가 있다
그럴땐 어김없이 여행을 떠난다.
내가 선택한 여행지들은 지평선이 훤히 보이고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둑해질때면 구태여 불을 켜지 않고 자연스레 잠자리에 드는 곳이었다. 그곳에선 인터넷도 전화 연결도 미약해서 몇 번 시도하다 이내 자연으로 시선을 옮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선택한 곳들이다.
내가 대자연 앞에서는 한낱 미물인 동시에 드넓은 우주 안에서는 아주 작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받고싶다.
부담과 책임을 내려놓고 그저 존재에 대한 사유만을 하고 싶다. 짊어진 무게들로 받들고 있는 여러 자아들을 다 내려놓고 그저 쓸모있지 않아도 살아있음을 확인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