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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elyn H May 29. 2024

인어공주를 위하여

Trade off 의 중요성

인어공주 이야기 좋아하세요? 

얼마전 실사 영화가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떠들썩했죠. 어릴 적 동화책으로 접한 저에겐 인어공주 이야기는 솔직히 충격과 공포의 이야기였어요. 왕자를 만나려고 두 다리를 얻는 대신,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고 마지막엔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공주라니요. 안데르센이 쓴 오리지널 결말은 좀 다르다고 하던데, 이미 제 머리 속 그녀는 말 못한 사라지는 비운의 캐릭터 그 자체였습니다.


최근 이 동화를 다시 떠올린 제 마음 속엔 어처구니 없는 생각들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녀 나름의 '선택과 집중'의 결과가 허무하게 끝났기 때문이랄까요. 가령, 목소리와 다리를 맞바꾸는 게 동등한 가치에 기반한 거래인가, 다른 교환 대상이나 옵션은 없었을까, 결국 이 거래에 응할 정도로 왕자는 매력적인가, 혹시 사랑이라 믿고 싶은 충동에 이끌린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죠. 무의미한 생각인 줄은 압니다만.


우리도 직장 생활에서 자주 사소한, 때로는 중요한 Trade off를 경험하게 됩니다. 

뭔가 하나를 이루려면 다른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돌이켜보면 저는 그런 갈림길에서 영리한 선택을 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네요. 충동적이진 않았지만, 조금만 더 알아보고 그로 인해 잃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는 사려 깊음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일례로, 이직을 결정할 때가 그랬네요. 하고 싶은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미련없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새로운 곳으로 옮긴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로 인해 예전 직장에서 쌓았던 커리어(전문성)과 네트워크,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 자산을 고스란히 놓고 나와야 되었지요. 전혀 몰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하간 과감하게(?) 이직한 것인데, 후유증이 크다는 것을 얼마 안되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직한 곳은 예전보다 더 크고 화려해 보이는 곳이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일을 하는지를 아는 동료가 전무한 저에겐 흡사 황무지였습니다. 말을 하려해도 상대방의 귀에 닿지 않는 인어공주의 답답한 심정이 이와 비슷할까요. 저의 의견이 조직에서 중요성을 갖고 의사결정으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예전 직장에 그대로 있었다면 저는 꽤 안정적으로 조직 생활을 하면서 고민 자체를 하지 않을 일이었을텐데요. 솔직히 황무지를 개간하면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고, 개간된 결과물도 아직까진 썩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것이 제가 선택한, 저의 Trade off의 결과인 것을요. 

그래도 그 과정에서 저는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새로운 동료를 얻었고, 그들과의 협업을 통해 부족한 역량이 조금 강해졌으니 마이너스는 아닙니다. 일말의 후회도 없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만, 아마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역시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지금도 비슷한 실수를 다시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늘 미지의 세계에 대해선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으니까요. 


인생에서, 특히 일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하고 그것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종의 Trade off 상황일 때,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가급적이면 다양한 루트로 정보를 많이 얻고 충분히 숙고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그것이 예측불가한 미래를 맞이하며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비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자와의 해피엔딩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고, 결국 아름다운 목소리를 유지할 것인지, 새로운 두 다리를 얻을 것인지의 문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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