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작은 시도들의 기록
연말이 되면 늘 하게 되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딘가 찝찝하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올해도 별다른 성취 없이 지나가 버린 것만 같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SNS에는 "올해를 돌아보며" 같은 글이 올라온다.
누군가는 새로운 직장을 얻었고, 누군가는 커리어를 바꿨으며,
또 누군가는 1년 동안 다녀온 여행 사진을 정리해 올린다.
그런 글을 보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난 올해 뭐 했더라?"
당장 주변을 둘러봐도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성취의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취준생이던 친구가 마침내 원하던 기업에 취업했고, 몇 년을 준비한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온라인은 더하다. 퇴사 후 자기 브랜드를 론칭한 사람, 큰 계약을 성사한 사람, 작품이 상을 받거나 정식 연재를 시작한 사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들 무언가를 이뤄낸 듯 보인다.
그런데 나는? 거창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딱히 떠올릴 만한 이룬 것이 없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다. 그러다 습관처럼 또 같은 말을 반복한다.
"진짜 아무것도 안 했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조금만 시간을 들여 하나씩 떠올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던 챌린지가 네 번이나 이어졌고, 단순한 아이디어였던 서비스가 1년 넘게 유지되었다.
계획에도 없던 자취를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맞이했다.
그리고 완전한 취뽀는 아닐지라도 우연처럼 찾아온 취업 기회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안 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는 거짓말이다.
사람의 기억은 흐릿해지고 하루하루의 작은 시도들은 쉽게 잊힌다.
쌓인 것들은 분명히 있음에도 기록되지 않았기에 흐려진다.
그러니 그 시간을 돌아볼 즈음엔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이는 아마도 나의 시선이 너무 거창한 것들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해진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남들처럼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거창한 무언가 하나'가 떠오르질 않으니, 사이사이 자잘하게 보낸 시간들은 없던 취급을 한다.
그렇게 연말이 되면 괜히 위기감이 들고
"나만 이렇게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짐하겠지. ‘올해는 너무 무의미하게 보냈으니까, 내년에는 진짜 열심히 살아야지.’
다이어리에 목표를 적고, 새해 첫날만큼은 의욕적으로 시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다짐했던 해가 이번이 처음이었을까?
돌아보면 내가 무언가를 이루는 방식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았다.
나는 늘 대단한 목표를 세운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한 번 해볼까?’ 하고 했던 작은 시도들이 결국 나를 만들었다.
챌린지 한 번만 해볼까? 친구 일정표 짜준 거 다른 사람한테도 팔아볼까? 자취하면 뭐가 달라질까?
별생각 없이 가볍게 던진 질문들이 어느새 내 삶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내디딘 작은 발걸음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의 1년을 만들었다.
그때는 별 의미 없는 일들처럼 보였지만, 지나고 보니 그 작은 시도들이 나를 조금씩 나아가도록 밀어 왔다.
매일이 비슷했던 것 같아도 그 작은 차이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 순간에는 몰랐던 변화들이, 지나고 나서야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올 연말에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 자잘한 시간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이 글은 거창한 성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의 결심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시도들이 어떻게 쌓였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돌아보니 내가 걸어온 길을 만든 건 크고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
"그냥 한번 해볼까?" 하며 내디딘 작은 발걸음들이었다는 것.
그 발걸음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를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올 한 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