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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작은 독립의 시작

본가 근처 자취는 처음이라서

by 단새

어느새 자취 1년차다.

대학원 시절 약 3년간 자취와 기숙사 생활을 해보았기에 아주 첫 자취는 아니다.

하지만 본가가 머지않은 동네에서 자취를 한다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처음부터 자취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는 곧장 본가로 내려왔다. 박사 진학 계획이 없던 터라,

당장 뭘 해야 할지 막막한 상태에서 타지에서 방을 구하는 일보다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본가에는 어머니 혼자 계셨고, 낮 시간 대부분은 혼자일 수 있었기에 큰 부담도 없었다.


흔히들 자취를 경험하면 본가 생활이 힘들어진다고들 했지만, 나는 꽤 잘 적응했다.

오히려 집안일을 도맡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집순이 기질이 발동했고, 방 밖으로도 잘 나가지 않는 생활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 자취를 하는 것이 조금 두렵다고까지 느껴질 즈음이었다.


본가에서 지낸 지 2년쯤 되었을 무렵, 다양한 시도를 했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다녀오고, 야행성 인간답게 부업도 하고, 부트캠프도 듣고...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맞나?'


불편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지만 너무 편안하다는 게 오히려 문제처럼 느껴졌다.

자취할 때는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삼사일에 한 번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곤 했고, 밤에 편의점도 자주 갔다. 그런데 본가에 있으니 배달도 거의 안 하고, 밤늦게 조심스러운 집 안 분위기 때문에 편의점조차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너무 갇힌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서울로 갑자기 상경하게 되면서 남은 전셋집 계약 기간 1년을 살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전세이자와 관리비만 내는, 비슷한 방 월세가격 대비 저렴하게 들어올 수 있다는 말에, 그냥 집만 보기로 하고 찾아갔다. 그리고 그날 바로 그 집에 살겠다고 했다.

고민만 한세월하는 성격의 나로서는 평소라면 망설였을 결정이었지만, 자취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여서인지 "한번 질러보자"는 마음이 앞섰다.


물론 처음엔 완전한 자취보다는 작업실처럼 쓰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더 부담없이 결정하기도 했고.

실제로 처음 두세 달은 본가와 자취방을 오갔다.




차로 20분 거리. 대중교통으로는 불편한 거리였지만, 덕분에 오랜만에 차를 자주 타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구를 정리하고 위치를 조금 바꾸는 등 최소한의 손질만 했다.

거실엔 카펫을 깔고, 커튼을 달고, 큰 테이블 하나를 들였다. 친구들과 밥도 먹고 작업도 할 수 있게.


그러던 것이 점점 자취방이 되었다. 침구를 들이고, 옷을 가져다 놓고, 냉장고를 채우고...

배달 음식도 시켜 먹고, 밤에 편의점을 나서는 삶이 돌아왔다.

한 번 살아본 자취의 리듬은 몸에 익어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삶에 적응해갔다.


본가가 가까워서 더 쉬웠던 것도 있다. 양파 몇 개, 마늘 몇 쪽, 본가에서 가져오는 식재료들.

어렵거나 귀찮은 빨래는 들고 가고, 물건을 같이 주문하기도 하고.

쓰다 보니 좀 불효막심한가? 아무튼 본가 근처 자취의 장점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반 년쯤 되었을 때 취업을 하게 되었고, 출퇴근을 시작했다.

예전처럼 요리를 자주 하지는 못했고, 집안일도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아, 이게 자취였지.

그래도 친구들과의 거리가 가까워 퇴근 후 놀러 오기도 했고, 같이 밥을 먹는 날도 많았다.

식당에 가거나 배달을 시키는 것도 훨씬 수월했고, 그런 날은 자취의 외로움이 덜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취의 적막함은 피할 수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고요가 가끔은 무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본가에 있을 때와는 다른 점도 있다.

방에서 뭘 할 때마다 들려오는 "뭐 하니?"라는 질문도 없고, 누군가에게 뭘 설명해야 할 이유도 없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어도, 밤늦게 나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무심한 시간이, 오히려 나를 자유롭게 한다.

작은 일에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 그것이 자취의 무게이자 매력이다.


그러니까 이번 자취는 내게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 예전의 생활 방식으로 조용히 돌아가는 일이었다.

다만 그 사이, 나는 좀 더 자랐고, 세상을 덜 무서워하게 되었고,

혼자 사는 일이 단순히 불편하거나 편리한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다.


본가와 멀지 않은 거리. 이따금 엄마의 반찬을 챙겨오고, 불편한 빨래를 들고 가고, 급한 택배를 맡겨두는 삶.

철저한 독립은 아니지만, 내가 내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점이었다.


자취를 한다고 해서 사람이 극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전보다 조금 더 조용히, 스스로를 아끼게 된다.

이 작은 변화가 내 안의 균형을 만들어주고, 그 균형 위에서 나는 오늘도 나를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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