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기 때문에 무너질 수 있었다.
서바챌을 완주했을 때, 나는 내가 다시 예전처럼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게 단지 그림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몰입하는 나를 다시 만난 게 반가웠다.
그 여세를 몰아 인스타툰 연출 강의 스태프로 참여하게 되었고,
기획 회의부터 챌린지 운영까지 나름의 역할을 해냈다.
분명 스스로에게도, 누군가에게도 ‘나 요즘 잘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뭔가를 해냈다는 감각이 분명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직후부터 나는 기운이 쭉 빠졌다.
특별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정말 말 그대로, 기운이 빠졌다.
뭔가를 하려는 마음도 해야 한다는 압박도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뭐든 피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루에 한 장 그림을 그리는 것도 버거웠고 글을 쓰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매일 무언가를 해내던 손이 멈췄고 멈춘 채로 며칠이고 침대에 누워 있곤 했다.
기운 빠진 백수가 눈을 뜨고 하는 일이란 하루종일 침대에, 소파에 누워있다가 다시 잠들기 뿐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기와 자취를 시작한 시기가 맞물려 있었다.
전에도 말했듯이 처음부터 자취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부모님과의 관계가 나빠서 집을 나가고싶어한 때도 아니었다. 또 대학원 시절 기숙사나 자취 생활을 해봤기에 그리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본가와 거리가 멀지 않다는 점 외에는, 그래서 돈이 나간다는 점 외엔 큰 결심이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때 나는 자취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를 설명하라면 뾰족하게 대답할 순 없었지만,
어쨌든 이 무기력했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그 선택은 잘 한 것이 되었다.
혼자 살게 되면서 가장 달라진 건, 어떤 감정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본가에 있었다면 무기력한 나날들 속에서조차 ‘뭐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방에서 오래 나오지 않으면 걱정하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게 되고, 괜찮은 척하며 식탁에 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취방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도, 침대에 누운 채 밤을 맞이해도 문제삼을 이는 오로지 나뿐이었다.
그 시기의 나는 처음으로 온전히 ‘무기력한 나 자신’을 허락할 수 있었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건만,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기운이 빠져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 무기력에 이름을 붙일 여유도 없이, 그저 버티듯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분위기에 쓸려 신청한 사주 상담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를 자각했다.
'마이파이'의 계수님을 통해 사주를 봤고, 서바챌을 통해 할인 쿠폰을 뿌리기에 이때다하고 신청을 했었다.
질문 몇가지에 답을 작성해 신청폼을 쓴 뒤 사주 관련 리포트를 받고 이후 전화 상담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한시간정도 상담을 진행했던 것 같은데, 그 시작에 계수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참 기억에 남는다,
“제가 사주 분석하다가 촉이 와서 써둔 말이 있어요.
'그동안 너무 많이 울었다. 이제 그만 울어도 될 것 같다.' ..좀 많이 힘들었죠?”
그 말을 듣자마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고, 그러다 문득 울컥했다.
사실 나는 울만큼 힘들게 뭘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뭔가 무너지듯 느낌이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힘들었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그동안 스스로를 다독인다면서도 사실은 다그치고 있었던 것 같다.
취준하면서 주변에서 너무 조급히 생각하지 마라, 라고 했을 때 '오히려 조급하지 않아서 문제인데?'라고 답해왔는데, 마냥 그렇지만도 않았구나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이후로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여전히 무기력했지만, 그 무기력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인스타툰에 솔직한 감정을 기록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의 댓글을 남겨주었다. 그 댓글들 덕분에 나도 내가 괜찮다고 느끼게 되었다.
뭐라도 성과를 내야만 의미 있는 게 아니고,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그렇게 조금씩 나를 설득해 나갔다.
이왕 바닥에 가라앉은 김에 맨바닥에 등을 대고 언젠간 떠오르겠지, 의욕이 나겠지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것도 제법 괜찮지 않냐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다.
가을이 깊어갈 즈음, 슬슬 생활비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제야 나는 다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신청했고,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며 이력서를 정리했다.
대단한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냥 더 이상은 이렇게 있을 수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꼭 돈때문에 움직여야겠다 할 정도로 궁하거나 비상금조차 없던 건 아니었으나 그냥...이젠 움직일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더라.
마음 한쪽에선 여전히 자신 없고 두려웠지만, 일단은 움직일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자취는 내게 많은 걸 바꾸게 했다.
공간이 바뀌었다는 건 결국 내가 나를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뜻이었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진 덕분에 오히려 더 진실하게 내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무너질 수 있었다. 그리고 무너졌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환경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무너지기 위해서라도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다.
나에게 자취는 그런 공간이었다.
혼자 울 수 있는 공간, 무기력할 수 있는 시간, 다시 회복될 수 있는 조건.
그렇게 나는 천천히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