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시도, 프로크리에이트 챌린지

그림 실력은 자신 없지만, 시도는 가능했다

by 단새

그 해, 내가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감각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 감각은 그 해를 다르게 기억하게 만든 첫 단서였다.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은 아니지만 툴을 다루는 데는 익숙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며 비툴, 사이툴, 클립스튜디오 등 다양한 디지털드로잉 프로그램을 만졌던 덕분인지 인스타툰을 위해 프로크리에이트를 독학할 때에도 유튜브 몇 개만 보면 금방 따라 할 수 있었다.

어느샌가 그 익숙함이 당연해졌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조차 너무 어려운 시작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조금 뒤의 일이었다.


내가 인스타툰을 시작한 건 HOC라는 커뮤니티에 들어간 후였다.

그곳에는 '챌린지'라는 문화가 있었다.

조금 앞선 사람이 한 발짝 뒤에 있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작고 단순한 프로그램을 한 달간 운영하는 것.

호스트가 되어 멤버들을 모집하고, 소정의 참가비를 받고, 직접 기획부터 진행까지 맡는 구조였다.


나는 그 당시 인스타툰을 그린 지 3개월 차였다.

인스타툰 작가들이라면 열에 아홉은 쓰는 프로크리에이트라는 그림 어플을 한창 배우고 있었고,

그렇다 보니 툴을 익힌 지는 겨우 세 달 정도였지만 왕초보에게는 그래도 한 발 앞선 입장이었다.


때마침 기수 활동과 연말파티 기획단 활동을 막 마친 상태였고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열의에 차 있었다.
그래서 문득 생각했다.


‘챌린지 호스팅을 한다면... 툴 정도라면, 내가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준비는 덜 됐지만 일단 시작해 보기로

‘왕초보를 위한 프로크리에이트 챌린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4주 동안 주 1회, 1시간 남짓 진행했다.
첫 주에는 모든 버튼 이름을 익히고, 브러시 사용법을 익히고,

그다음 주부터는 점차 자세한 기능들을 하나씩 익혀 나가면서

챌린지의 마지막에는 각자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흐름으로 구성하였다.


챌린지 모집에 사용한 상세 페이지의 일부 내용. 예시 그림을 첨부한 것도 피드백 반영의 결과이다.


처음 기획할 땐 ‘이게 도움이 될까?’, ‘이 정도 실력으로 가르쳐도 되나?’ 하는 걱정이 컸다.

하지만 준비할 시간을 길게 두지 않았다.
이틀 만에 커리큘럼을 만들고 상세페이지를 작성한 뒤, 피드백을 받고 바로 신청을 열었다.
예전 같았으면 몇 달은 고민하고, 또 몇 달은 다듬었을 텐데 그땐 무슨 용기였는지...

이상하게도 망설이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해보자고 마음먹은 것.
그게 나로선 꽤 큰 시도였다.


실시간으로 만든 자료실, 땀 뺐지만 우째도 되더라

챌린지 참가자들이 복습할 수 있도록 자료실도 만들었다.
예전 성격대로였다면 이 자료실은 모든 내용이 다 완성된 상태에서 오픈됐을 거다.
하지만 이번엔 완성될 때까지 시작을 미루지 않았다.
챌린지를 진행하면서 그 주에 진행한 내용을 실시간으로 복습 자료로 다시 만들어 올렸다.


처음엔 진땀을 뺐다.
진행도 벅찬데 자료까지 정리해야 하니 시간도 체력도 빠듯했다.
벅차긴 했지만 그 순간이 싫지는 않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매주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게 나를 움직이게 했다. 매주 마일스톤 같은 목표가 오히려 실행력을 줬는지도 모르겠다.



예상 밖의 반응이 주는 힘

첫 회차를 마친 뒤, 뜻밖의 피드백을 받았다.
“정말 하나도 몰랐는데, 그림 하나를 완성할 수 있어서 너무 뿌듯했어요.”


내가 처음 바랐던 것인 '가장 처음의 진입장벽을 깨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그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었다는 것이 기쁘기 그지없었다.
어느새 너무 당연히 쓰고 있는 쉬운 툴을 알려주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시작을 도왔다는 것.

그 감각에는 조용한 감동이 뒤따랐다.


매 챌린지가 끝난 뒤 받은 응답의 일부


물론 모든 것이 처음부터 매끄럽진 않았다.
한 번에 배우는 양이 많다는 피드백도 있었고 신청자의 기대와 내가 기획한 방향이 어긋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수정했다.


같이 그리는 시간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취감에 집중해

매주 하나씩 그림을 완성하는 흐름으로 바꾸었다.
상세페이지도, 운영 방식도 회차마다 계속 다듬어갔다.



매 회차, 더 나은 다음을 생각하며

총 네 번의 챌린지를 운영했다.
진행이 끝날 때마다 ‘잘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다음엔 좀 더 나아질 거란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다.


매 달 챌린지가 끝날 때마다 구글폼으로 피드백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다음 회차는 수정했다.

커리큘럼이든, 1시간 동안 진행하는 방식이든, 숙제 인증이든

필요하다면 모든 것을 수정했다.


개선점에 대해 건의받은 내용은 거의 다 반영하려 노력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만든 챌린지 커리큘럼은 처음엔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진행해 보고, 사람들의 반응을 듣고, 고쳐보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실제로 겪어봐야만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다른 챌린지 호스트분들이 “참여자 피드백을 참 잘 반영하신다”라고 말해줬을 때
이게 나의 강점이구나, 이게 내가 직접 해봤기에 배울 수 있었던 것이구나 싶었다.


네 번째 챌린지 이후에는 좀 더 타깃을 뾰족이 하고 커리큘럼을 업그레이드해서

이 챌린지 자체를 커뮤니티 바깥으로 확장해보려 했지만 결국 실행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깨달은 것은 분명했다.
스스로 배운 걸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유료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
툴 하나로도 시작은 가능하다는 사실.

그걸 내가 직접 해봤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다.



작은 시도, 큰 감각

이 프로크리에이트 챌린지 전후로 ‘작은 시도’라는 말의 의미가 바뀌었다.


완전히 준비되지 않아도 일단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실행 후에 조정하며 완성해도 괜찮다는 것.

하이아웃풋클럽에서 그렇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발사 후 조준.'

그 말의 의미를 처음으로 온몸으로 이해한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내 성격상 천천히 준비하고 다듬는 방식이 더 맞다고는 생각한다.

실제로 실시간 운영의 피로감도 있었고, 네 번째가 마지막 운영이기도 했으니.

아무래도 타고난 기질, 오래 관철해 온 태도는 하루아침에 바뀌긴 어려우니까.


하지만 이건 그런 내 성향에도 불구하고 해낸 시도였다.

그런 성향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경험을 시도했고, 끝까지 해냈다.


이 챌린지가 없었다면 나는 내 힘으로 만든 무언가를 운영해 본 경험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 경험 덕에 이후 여행일정 서비스를 시작할 때에도

일단 열고 반응을 보며 수정한다’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택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일은 준비가 끝나서가 아니라
해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시작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그렇게 시작된 또 하나의 시도, 여행 맞춤 일정 서비스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keyword
이전 01화나는 왜 매년 '아무것도 안 했다'고 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