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안에는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집을 짓고 산다.
양심은 우리를 선으로 끌고 가지만, 이기적 욕망이 그 앞을 가로막는다. 착해지고 싶은 열망이 있지만, 죽어도 손해 보기 싫은 욕심이 팽팽하게 맞선다. 작품 <지킬 앤 하이드>는 자비로운 의사 '지킬'이 동물적 본능으로 가득한 또 다른 자아 '하이드'를 발현시키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평소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예의를 갖춘 의사 지킬로 살아가지만, 하이드가 등장하는 순간 폭력과 살인을 서슴지 않는 괴물로 변한다. 중요한 점은 지킬과 하이드는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 남매와 막내이모네 남매와는 공통점이 많다. 누나와 동생이 두 살 터울이라는 것, 누나가 예민하고 동생이 순하다는 것, 누나보다 동생의 인물이 봐줄만하다는 것, 남에게는 매우 친절한 누나가 동생에게는 히틀러 뺨치는 독재자라는 것, 엄마와 동생 사이를 매우 견제한다는 것 등등 마치 가족드라마 시즌1, 2처럼 닮아 있었다.
"언니, 첫째가 자꾸 둘째를 이르는데 아주 죽겠어."
"막내야, 커도 똑같다. 차라리 싸울 때가 낫지, 요새는 서로 본 척도 안 해."
우리 엄마와 막내이모는 자식들 몰래 통화를 주고받으며 이런 답답한 사정을 나누었다. 우리 집이나 이모네 집이나 남매간에 벌어지는 일들이 비슷했기 때문에 말이 잘 통했을 것이다. 아무리 키워도 남매의 관계가 나아지지 않고 해결할 뾰족한 방법도 없으니 속풀이만 할 뿐이었겠지만 말이다.
이 와중에 아주 독특한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렇게 못마땅해하는 동생에게 주기적으로 편지를 쓰고 선물을 사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동생을 괄시하면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입학이나 졸업 등 기념할 만한 날에는 꼭 선물을 준비했다. 평소 나에게는 큰돈을 쓰지 못하는 소심한 인간인데, 동생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다. 내 가방은 시내 보세 매장에서 사도 동생 것은 백화점에 가서 사주었다. 아이쇼핑을 하다가 동생에게 어울릴 만한 티셔츠나 점퍼를 발견하면 선뜻 결제를 하고 두 손 무겁게 집으로 오고는 했다.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꽃무늬 편지지 같은 거에 주절주절 멘트까지 꼭 적어서 함께 전했다.
동생은 내가 뭘 주면 바로 보지도 않고 휙 던져 놓았다. 내가 또 한바탕 사람 성의가 있는데 어쩌고저쩌고 그게 지금 선물 받는 태도냐 왕왕왕 거리면 마지못해 일어나 내가 사 온 옷을 걸쳐 보거나 가방을 메어 보고는 했다. 편지? 그건 영영 안 읽고 던져 놔서 나중에 대청소할 때 쓰레기로 나오고는 했다. 동생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평소 그렇게 쥐 잡듯이 몰아가다가 웃으며 선물을 가져오니, 이 무슨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이란 말인가.
나는 동생에게 정신 나간 하이드처럼 굴었지만, 사실 어린 동생을 챙겨주고 싶고 그와 잘 지내고 싶은 여린 지킬이 나설 기회를 늘 엿보고 있었다.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사랑스럽지 못한 아이라는 열등감 때문에, 평소에는 마음 저 구석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기념일이라는 떳떳한 구실이 생기면 당당하게 나왔던 거였다. 동생을 위해 쓰는 돈이 아깝지 않고, 동생이 멋있게 입고 다니면 좋겠고, 어디 가서 꿀리지 않으면 좋겠고... 그것 또한 나의 진심이었다.
지킬 앤 하이드의 결말은 자살이었다. 하지만 나는 하이드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함부로 기어 나오지 못하게 결박해서 저기 깊은 곳에 가둬놓을 작정이다. 그동안 충분히 활약했으니 이제 지킬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