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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기 때문에

by 난화 Jan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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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 같은 인간이 된 이유를

두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엄마'와 '가난'을 택할 것이다.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는

착한 딸이 되고 싶은 마음과

엄마를 벗어나

나 자신으로 살고 싶은 욕망.

그렇게 끊임없이 싸우면서

나의 어린 날, 젊은 날이 지났다.


우리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그때의 엄마와 그때의 내가

그렇게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까?


엄마는

얼른 자라며 소리를 지르고,

무릎 꿇고 비는 어린 자식을 사납게 때리고,

그런 아이들을 부둥켜안은 채 엉엉 울었다.


나는

엄마도 동생도 밉다고,

다 죽었으면 좋겠다며 악다구니를 쓰고,

쌀을 사야 할 돈으로 최신가요 테이프를

사내라며 끝까지 억지를 부렸다.


나는 피아노가 배우고 싶어.

나는 책을 갖고 싶어. 마음껏 읽을 만큼.

물체 주머니도 사고 물감도 사가야 돼.

발레 공연이라는 걸 볼 수 있다면.

새 양말과 새 속옷이 필요해.

육성회비도 못 내고, 수업료도 못 내고,

물려받은 교복 치마에는 주머니도 없고.

집에 쌀도 없고 대신 먹는 수제비는 싫고,

외상값이 쌓인 동네 슈퍼를 지나다닐 때마다

가슴을 졸이며 뛰어가고.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아도

선물을 살 수 없으니 갈 수가 없고.


뭐 이런 식의 일들은

자주, 아주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엄마에게 차마

가난에 대해서 따지지 못했다.

원망스러운 마음에

괜한 트집을 잡아

엄마에게 생떼를 부렸지만

우리가 왜 이렇게 가난하냐고는

물을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아프게 할 수는 없으니까.


슬프게도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

엄마가 미운 게 아니라

바뀌지 않는 현실이 미워서

내가 자꾸 악을 쓰고 억지를 쓴다는 것을.

그래서인지 엄마는 나의 그 악다구니를

다 참아 주었다.

그 침묵이 미워서 나는 더욱 날뛰었다.

차라리 나쁜 년이라고 욕을 하면

나도 제대로 따질 수 있었을 텐데

엄마는 자꾸 나보고 착한 딸이라고 했다.


밖에서 나는

눈치를 보는 대신

대수롭지 않은 척했고

처음부터 원하지 않는 척했고

오히려 우리의 가난이

자랑이라도 되는 듯

친구들에게 떠벌리기도 했다.

우리 집에 빨간딱지가 붙은 날에도

여느 때와 같이 친구를 집에 불렀었다.


이 모든 것은 연기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자존심을

지켜 내려는 몸부림이었다.

돈은 없지만

내가 하찮은 인간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었다.


내가 만든 나는

똑똑하고 씩씩하고 재미있는 사람인데

가난은 비웃듯이

나의 몸부림을 수치스럽게 했다.


나는 지금도 가난한 주인공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도시 변두리의 낡고 컴컴한 주택가를

감정의 동요 없이 바라보지 못한다.

여전히 가난한 아이들이 있고,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게

못 견디게 서글픈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싫을 때가 있다.


엄마, 서울에 다녀오셨던 날에

엄마가 그러더라고.

신촌 현대백화점에 갔더니

한여름인데

교복 입은 아이들이 귤을 까서 먹고 있더라고.


나는 엄마의 눈을 보지 못했을 거야.

엄마는 주머니도 없는 교복을 입은 채

수험 생활을 하는 딸을 떠올렸을 테니까.


그런데 엄마,

나 아이 갖고 한 겨울에 수박도 먹었어.

한여름에 귤 한팩을 사서 아이와 먹기도 해.


그때 남들이 하는 거 다 못하고

남들이 갖는 만큼 못 가져도

그렇게 서로 미안해하지 말 걸 그랬나 봐.

대신 그냥 더 사랑할 걸 그랬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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