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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넘어 배우는 양치질

by 난화 Jan 3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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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기가 태어나 엄마가 되었을 때

나는 막막하고 두려웠다.

아기를 갖고 낳을 때까지

지독한 구토에 시달리는 토덧을 했고

그 와중에 직장 생활도 했으니

태교나 그 외의 준비는 거의 불가능했다.

방바닥에도 토하고 직장 복도에도 토했다.

간신히 아기 배냇저고리와 내복 몇 벌을 준비해

아기를 만났는데, 아기와 마주한 감격도 잠시,

대체 이 작은 생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런 나의 무지가 아기를 다치게 할까 봐

허둥지둥 어쩔 줄을 몰랐다.


어떻게 젖을 물리는지,

어떻게 기저귀를 가는지,

어떻게 옷을 벗기고 입히는지,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어떻게 눕혀야 하는지...

병원에서는 간호사의 도움을 받고

조리원에서는 일하시는 분의 도움을 받고

집에 와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그렇게 약 5주가 지나자

나와 아기만 덩그러니 남았다.


나에게는 아기를 낳았다고 찾아와 줄

친정 엄마가 없었다. 

그래서 요즘 엄마들이 그러하듯

맘카페에 가입하고 육아 서적 몇 권을 사서

회복되지 않은 침침한 눈으로 

열심히 검색하고 또 공부했다.


맘카페에서 추천하는 아기띠나 유모차를 구하고

젖병과 젖병 소독기도 사고

한 달 된 아기가 보는 초점책도 사고

그 뒤에는 컬러북도 사고 그랬다.


책에서 읽은 것도 놓치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이가 없는 아기도 양치를 해줘야 한다길래

책에 쓰여 있는 대로 가제손수건에 물을 묻혀

아기의 잇몸을 살살 닦아 주었다.

토끼처럼 이 두 개가 쏘옥 올라온 다음에는

아기 단계에 맞는 칫솔과 무불소 치약을 사서

몸부림치는 아기를 안고 양치를 시켰다.

이가 늘어나는 만큼 양치에도 더 열심을 냈고

칫솔과 치약도 연령에 맞게 업그레이드를 했다.

아이가 스스로 칫솔을 쥐고 난 다음부터는

아침저녁으로 양치를 시키느라 

추격전과 실랑이가 365일 중 364일 이어졌다. 

그렇게 1년, 2년, 3년, 4년...

큰 아이가 열 살이 된 올해까지도

내가 양치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칫솔을 잡지 않는다.

아이님께서 양치를 마치시면

내가 치실을 준비해 이 사이 찌꺼기를

말끔하게 제거한다. 

심지어 둘째 놈은 양치에 대한 저항이

첫째보다 200배 심해서

회유, 협상, 고성을 동반한 위협까지 가야

겨우 1분 양치를 성공할까 말까 한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양치질이 이토록 오랜 세월 연마해야 하는

고급 기술인 줄 꿈에도 몰랐다.

양치에 마음도 열어야 하고,

양치에 필요한 손목 스냅도 익혀야 하고,

몸에 밴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고.


양치 전쟁을 마치고 아이들을 재운 다음

비로소 나의 양치를 시작한다.

사실 이 시간쯤 되면 칫솔 들 기력도 없다.

거울에는 한껏 늙어버린 퀭한 모습이 비친다.

잠시 칫솔질을 멈추고 

입을 크게 아- 벌려 본다. 

입 안쪽은 죄다 금으로 씌우거나 때워서 

얼룩덜룩하고, 그중 하나는 임플란트 한 건데

얼마 전 치과 진료를 볼 때 

임플란트 언제 했냐는 의사 말에,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요. 어떤 게

임플란트 한 건지도 몰라요. 애 둘 키우느라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했다.

의사는 어이없어했지만 진짜 그랬다.


어릴 때는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았고

돈 벌어 치료해 겨우 메꿔 놨더니

애 키우는 동안 못 먹고 못 자고 못 씻느라

나의 이는 상하고 더러워져 버렸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제대로 양치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다.

엄마가 나에게 양치질을 알려 준 적이 있었나?

나는 지금 어떻게 양치를 하고 있지?

피곤하면 그냥 자고, 

간식 집어 먹다가 그냥 자고,

뭐 그랬던 것 같은데?


양치질을 멈추고 후다닥 거실로 뛰어 들어가

유튜브에서 '양치질하는 법'을 검색했다.

권위 있는 치과 의사 한 분이

한국인들 양치질 싹-다 잘못됐다며 호통을 치신다.

그러더니 양치의 뜻, 양치 방법, 양치 효과를 

알려주시는데 눈이 번쩍 떠졌다.


이 영상을 보고 나서야

왜 양치질에 3분이 걸리는지 

처음으로 완전히 이해했다.

온전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전율?

그리고 마흔이 넘은 내 나이에

허탈함을 조금 느꼈다.


엄마, 나는 요즘 양치질을 새롭게 연습하고 있어.

의사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칫솔모가 작은 걸 사서 이 깊숙한 곳까지 넣고

이와 잇몸 사이도 닦고,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쓸어 닦고,

혀와 입천장까지 닦아 내고.

아이들이 엄마아!!! 아무리 불러대도

나는 후다닥 서두르지 않고 꿋꿋이 양치를 해.

아침에도, 점심에도, 간식을 먹은 후에도, 저녁에도.

나는 거울을 보며 아주 천천히 소중하게 양치를 해.

이제야 제대로 내가 나를 아껴주는 것 같아서

계속 이렇게 정성스럽게 양치를 하려고.


내가 엄마한테 왜 양치질도 제대로

안 가르쳐 준거냐고 원망하는 거 절대 아니야.

그 시절 엄마가 어떻게 양치질 가지고

우리와 실랑이를 할 수 있었겠어?

그건 우리에게 너무나 고상한 사치였던 거지.

하루하루 살아남느라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못했으니까. 

얼굴이 더럽고, 이가 더러워도,

그건 우리 목숨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어.


엄마, 나 기특하지?

이제라도 제대로 양치해 보겠다는 거니까.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을 벗어 버리고

변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잖아.

엄마가 잔소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양치하는데 40년이 더 걸렸네.

우리 아이들도 더 기다려 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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