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누가 불쌍한 사람일까?
어릴 때는 불쌍한 사람을 구별하는 게 아주 쉬웠다. 기차역 앞 육교에서 상반신만 남은 몸을 질질 끌고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 엄마 아빠 없이 고아원에서 지내는 아이들, 판잣집이나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가난한 사람들 등 세상에서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인 줄 알았었다. 그러다 머리가 커지면서 다른 종류의 불쌍함도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고립되어 살거나 나쁜 짓만 저지르면서 세상에 해를 끼치는 사람, 뜻밖의 사고나 범죄에 희생된 사람, 너무 착해서 할 말 못 하고 억울하게 사는 사람 등도 불쌍한 사람일 거라고 여겼다.
만약 불쌍함의 조건이 저런 것들이라면, 나 역시 얼마든지 불쌍한 인간의 범주 안에 들어갈 것이다. 집에 쌀이 떨어지는 날도 많았고, 빚쟁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이닥쳐서 어린 우리들에게까지 행패를 부리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어머니에게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불쌍한 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다정한 부모님을 갖지 못했어도, 사람이 나를 괴롭힐 때도, 내가 바라던 소원이 허망하게 물거품이 되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도, 당장 다음 달 생활비 걱정을 할 때도, 나는 절대 불쌍한 사람은 아니었다. 삶에 불편하고 불만족스러운 순간들이 있었다 해도, 그 순간들이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만약 누가 나의 처지를 보고 '너 참 안 됐다'라고 한다면 나는 불쾌하고 또 분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삶을 함부로 동정하지 않는다. 측은해하지 않는다. 그에게 일어난 일이 슬프고 괴롭고 아플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불쌍한 인간을 만들면 되겠는가.
나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름다운 인생이 꼭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을 덮친 무서운 사고, 시련, 고통 등을 벗어던지고, 결핍과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서 꿈을 꾸고 그 꿈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을 준다. 과거 자신을 상처 입힌 경험과 기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그 상흔을 기꺼이 끌어안고,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더욱 사랑하고 너그러워지는 길을 걷는 사람들은 반드시 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
엄마, 우리가 함께일 때
나는 늘 엄마가 불쌍하고
동생이 불쌍하고 그랬는데
나 자신은 불쌍하다고 생각 안 했어.
고난이 나를 훌륭하게 만들 거라는
엄마의 말을 진짜로 믿었거든.
많이 사랑하는 만큼 훌륭해지는 거라는
그 말도 나는 믿었어.
그래서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까지
품으려고 애를 썼고
내 인생의 고난이 거름이 되어
언젠가 열매를 맺을 거라 기대했지.
그때 내가 기대한 열매는 대단한 성공이었어.
그래서 평범보다도 한참 아래인 것 같은
삶이 이어질 때
엄마의 거짓말에 속은 것 같아서 화도 났었어.
그런데 엄마 말은 진짜였어.
어릴 때 읽은 위인전의 주인공같이
대단한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고난은 나를 겸손하게 하고
현실에 감사하게 하고
이런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을 만나게 하고
그래서 외롭지 않은 인생을 살게 됐거든.
엄마, 엄마는 어린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고
우리는 고생하는 엄마를 불쌍히 여기고
그러면서 살았는데 절대 그런 마음을
서로 들키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엄마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줘서
나에게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해줘서
나는 지금도 내가 불쌍하지 않은 것 같아.
그레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그때 사실 나도 엄마가 정말 가여웠다고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
이미 내 마음을 알고 있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