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8살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2008년 2월, 다른 세상에서 살아보겠다고 준비도 없이 이민 가방 하나 챙겨서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었다. 그때 나는 혼자였다. 혼자 결정하고, 혼자 짐을 꾸리고, 혼자 비행기를 탔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인터넷 검색으로 최대한 정보를 찾아 수첩에 적어서 첫 해외 살이에 나섰다.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서 여러 수속을 마친 뒤 비행기에 오르자 이 모든 것을 과정을 무탈하게 해냈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나는 곧 하늘을 날 예정이었다. 내가 하늘을 날다니, 얼마나 기막히고 흥분되는 일이란 말인가! 나는 이륙을 준비하는 비행기의 굉음을 들으며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두리번거렸다. 그때, 너무 충격적이었던 것은 기내의 사람들이 신문이나 잡지 등을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니, 이 엄청난 기체에 몸을 싣고 저 높이 날아오를 사람들이 어떻게 이리 무심할 수 있단 말인가?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환희를 앞두고 어찌 이리 태연하게 잡지나 읽을 수 있을까. 나는 괜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처음이었으니까. 그 '처음'이 주는 신선한 기대와 흥분에 푹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 뒤에 한국으로 나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 역시 기내용 잡지를 뒤적이며 면세 물품의 가격을 훑어보고 있었다. 남들이 다 아는 것, 남들이 경험한 것도 내게 '처음'이 되면 그것은 전혀 식상하지 않다. 나는 오롯이 그 '처음'을 만끽하면 된다.
내가 첫아기를 가졌을 때, 나는 내 안에 찾아온 생명에 대한 신비와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떤 첫 경험보다도 강렬했다. 아기의 태동 소리를 듣고, 흑백 사진 속 점으로 존재하는 아기의 사진을 본 순간부터 나는 이 아이에게 폭 빠졌다. 임신 기간 내내 심한 입덧으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설쳤다. 먹은 것 없이 수시로 구토를 하니 위액이 올라와 입에서는 늘 쓴 맛이 났다. 그런데도 나는 아기가 밉기는커녕, 혹여나 아기가 같이 힘들까 봐 조심스레 배를 쓰다듬고는 했다. 평소에 겁쟁이 쫄보라서 종이에 손만 베어도 벌벌 떨며 아프다고 유난을 떨던 나였다. 그런데 아기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 나는 갑자기 의젓하고 용감한 사람이 된 것이다.
아기가 세상에 나와 처음 내 품에 안긴 순간, 내 팔에 누워 그 작은 입으로 젖을 물던 순간, 나와 눈을 맞추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맑은 눈빛, 기침을 할 때마다 작은 몸뚱이를 들썩들썩거리던 애처로운 모습, 나를 향해 처음 웃던 날, 손을 뻗어 뭘 잡기도 하고 목에 힘을 주던 의젓한 모습, 낑낑대며 뒤집고, 앞으로 기어가고, 앉고, 서고, 걸음마를 떼던 모든 순간, '마, 마, 마, 엄.. 마'하고 부르던 사랑스러운 목소리. 첫아기의 성장은 언제나 내 가슴을 뛰게 했다.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내 눈과 귀와 손과 발은 온통 이 작은 아기를 향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지겹지가 않았다. 아기가 자면 아기를 찍은 사진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아이가 크면서 말도 배우고 어린이집도 가면서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알아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엄마에게 혼나는 일도 생기고, "엄마 미워!" 하는 일이 잦아졌다.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아이는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짜증과 억지가 늘고 동생을 괴롭히기도 하고 일부러 못된 짓도 했다. 자기가 잘못을 하고도 자기 맘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억울해했다. 나도 아이가 커서 말을 다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니 화를 내거나 아이를 채근하는 일이 많아졌다. 방 치워라, 양치해라, 머리 감아라, 수학 문제집 풀어라, 얼른 챙겨라...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자꾸 그런 말들이 나왔다. 이렇게 시간이 더 흘러 사춘기가 오면, 세상의 자식들이 그러하듯 내게 이렇게 말하겠지.
"엄마가 뭘 안다고! 엄마는 나한테 해 준 것도 없으면서!"
아직 그런 날이 온 것도 아닌데, 벌써 억울한 건 왜일까. 그것은 엄마가 기억하는 그 아름다운 시절을,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누워서 눈만 깜빡거려도 어여쁘기만 했던 내 아기. 그래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던 그 아기. 내 몸이 부서지고 망가져도 아무 상관이 없었던 그때. 세상의 모든 인간은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기도 엄마도 그 시절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엄마는 일하러 가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매 끼니마다 뭘 먹을지 고민해야 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도 시켜야 하고, 틈틈이 공과금이나 세금도 처리해야 하고, 병원 진료도 받아야 하고, 아이들 예방 접종도 챙겨야 하고... 엄마의 세상은 늘 복잡하고 묵직하다. 그러니 아이가 엄마에게 놀아달라고 해도 멈칫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엄마,
엄마가 쓴 일기장을 꺼내 읽었어.
나는 기억하지 못하고 엄마만 기억하는
그 시절의 기록들...
이 전에도 몇 번이나 읽은 적이 있는데
내가 아기를 갖기 전에는
엄마의 일기를 그냥 글자로만 읽었나 봐.
그 문장에 숨어 있는 엄마의 애끓는 사랑은
전혀 읽지 못했거든.
내 엄마는 잘 웃지 않는 차가운 사람이고
분주한 뒷모습이 익숙한 사람이고
내 성적이 좋을 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라고
엄마와 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어.
엄마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토록 열심히 사랑하고
그토록 열심히 살았는데
엄마가 가장 사랑한 내가
가장 큰 배신자라니.
언젠가 내 딸도 그때의 나처럼
나를 원망하고 오해할지도 몰라.
진짜 내 사랑이 너무 부족해서
아이를 다 채워주지 못하는 게
사실일 수도 있어.
그러나 나는 떳떳할래.
부족하고 흠이 많은 내가
이토록 사랑한 사람은
오직 내 생명 같은
아이들뿐이니까.
엄마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