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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부엌에만 있는 이유

by 난화 Jan 3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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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었다.

날렵한 솜씨로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 내고

보자기 천으로도 본인이 입을 롱스커트를 만들었다.

보잘 것 없는 살림이어도 집안은 늘 광이 났다.

엄마가 매일 여러 번 쓸고 닦고

밀리는 것 없이 다 해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엄마아-" 하고 부르기만 하면 됐다.

엄마, 떡볶이 먹고 싶어.

엄마, 내 블라우스 어딨어?

엄마, 이따가 정류장으로 마중 나와.

엄마, 양말 구멍났어. 


딸이랍시고

엄마가 해주는 게 당연한 줄 알고

뻔뻔하게 잘 살았다.


고생 많이 하고 산 엄마들이 대개 그렇듯이

엄마는 내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살림은 엄마 몫이고

나는 그냥 그 덕으로 사는

철부지 딸이었다.


엄마 음식 만드는 솜씨가 워낙 좋아서 그랬는지

어디를 가도 부엌은 엄마 차지였다.

낯을 많이 가리고 숫기가 없던 나는

어떻게든 엄마 치마폭 뒤에 숨고 싶었지만

부엌일로 분주한 엄마 곁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시골 외가에 내려 가면 

할머니도 있고 올케도 있는데

엄마가 상을 다 차리고 치웠다.

식구들 둘러 앉아 과일을 먹을 때도

엄마는 덜그덕거리며 그릇 씻기에 바빴다.

올케는 나가 있으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친척 어른들 사이에 끼어

어색하게 벽에 붙어 앉았었다.

교회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교회 가자고 성화여서 

억지로 따라 갔는데

나를 뚝 떼어 놓고 엄마는 또 부엌행이었다.

엄마가 거기서 국수를 삻는 동안

나는 저들끼리 낄낄대며 노는 무리의 아이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집에서 엄마가 음식을 하면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늘어 놓았다.

엄마, 듣고 있어? 응? 

자꾸 성가시게 물어가면서 말이다.


나는 엄마가 부엌에 있는 게 싫었다.

엄마 뒤에 숨을 수가 없어서,

엄마의 뒷모습에 대고 말을 해야 해서,

우리 엄마만 허드렛일을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엄마가 부엌에서 나오기를 바랐다.


엄마, 나는 엄마가 일을 잘해서

남 도와 주기를 좋아해서

자꾸 부엌에 가 있는 줄 알았거든.

어느 날 엄마가 이모랑 통화하는 걸

듣기 전까지는 말이야.


과일 한 봉다리도 없이 빈손으로 

친정에 들어서기가 민망하고

조카들에게 돈 만원 쥐어줄 형편이 안 되어

올케 보기 부끄러웠다고.

올케가  모시고 사는 자기 엄마 아빠가

대접을 못 받을까 싶어 속을 끓였다고.

그래서 올케가 이러쿵저러쿵

시댁 욕하는 얘기도 다 들어주고

대신 욕도 다 먹고

부엌일도 도맡아 했다고.

아마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

남편 없이 두 아이들 데리고 나타난

젊은 여자를 두고 얼마나 입방아를 찧었을까.

수군대는 소문을 피하기에

부엌 만큼 적당한 곳이 없었을 거야.


엄마, 나는 엄마가 내 옆에서

나를 막아줬어야 했다고

오래오래 그렇게 생각했거든.

그런데 사실 엄마는 그 부엌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거야.

온몸으로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던거야.


엄마, 부모 속을 아는 자식 없다잖아.

나도 지금 엄마지만

엄마처럼 깊은 속을 지니지 못한 것 같아.

내가 엄마로 살아도

그 시절 엄마의 그 깊고 깊은 사랑을

헤아리지 못할 것 같아.


엄마, 

나 떡볶이 먹고 싶어...

엄마가 만들어주던 달콤하고 꾸덕한

그 떡복이를 딱 한 번만이라도 먹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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