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 살, 동생이 여덟 살 무렵에
엄마는 우리 남매를 데리고
어느 변두리 마을로 이사를 했다.
지금도 눈에 선한 그 누추하고 황망한 풍경.
오래된 농 하나 넣으면
겨우 누울 곳만 있던 방 한 칸과
신발을 신고 나와야 갈 수 있는
연탄 떼는 부엌, 그리고 세숫대야 하나.
끼기긱 소리나는 초록 대문을 열고 나가야
대소변을 해결할 수 있는 허름한 재래식 변소.
맨날 똥내가 진동을 하고
날벌레들이 잔뜩 달라붙는데
허름한 널빤지 두 개 사이에
다리를 지탱하고 앉아 볼 일을 봐야 하는 곳.
어린아이에게 그보다 끔찍한 일이 있을까?
이삿날,
도저히 그 무시무시한 똥간에 갈 수가 없어
저 뒤 어디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나는 거기에 놓인 철조망을 넘어가다
흰 스타킹이 줄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주르륵 소변이 흘러 몸을 축축하게 적셨다.
집이 망해서 연고지도 없는 곳에
셋방살이하러 가면서
엄마는 내게 고급스러운 빨간 원피스에
흰 타이즈를 입혔었다.
우리는 이런 데 살 사람이 아니에요,
내 원피스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사실 우리는 그 가난한 동네에서도
더욱 못 사는 뜨내기였지만 말이다.
그때, 엄마가 내게 화를 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다 젖은 빨간 원피스를 입고
서럽게 엉엉 울었던 것 같다.
빚만 잔뜩 지우고 사라진 남편 대신
두 아이를 데리고 도망쳤던 그때,
엄마는 겨우 서른둘이나 셋 정도였다.
엄마, 무섭지 않았어?
나는 모든 게 낯설고 무서웠는데
차마 엄마에게 그 말을 하지 못했어.
엄마가 나를 버리고 떠날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거든.
그 세월을 지나 내가 좀 컸을 때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했었지.
'나는 자식 버리는 사람들, 이해 못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안심이 됐어.
내 눈에 너무 예쁜 엄마였으니까.
너무 씩씩하고 멋진 사람이라서
우리 없이도 살 수 있을까 봐 걱정이 됐거든.
엄마, 지금 내 딸이 열 살, 아들이 여덟 살이야.
그리고 얼마 전에 나는 두 아이와 함께
도망치듯 이사를 왔어.
돈도 별로 없어.
그런데 확실히 아는 건,
내가 어릴 때 괜한 걱정을 했다는 거야.
나는 애들 없이는 절대 살 수가 없으니까.
엄마도 마찬가지였을텐데...
엄마, 사실 나 좀 무서워.
돈이 없는 것도, 앞으로 살아갈 일도.
엄마 한 테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우리 아이들은 절대 몰라야 하니까.
엄마는 그 무서운 세월 속에서 우리를 지켜냈고
엄마 딸인 나도 잘 해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