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팔뚝이 굵은 편이다. 손가락 마디도 굵고 손등에는 시퍼런 핏줄이 선다. 네모형 얼굴에 눈코입이 오밀조밀 모여 있어 여백이 너무 많다. 목에 살이 있어서 사람들이 자꾸 갑상선 문제로 오해를 한다. 의사 선생님이 그냥 목이 그렇게 생긴 거라고 확답을 주셨지만 밝히기가 민망하다. 뭘 먹으면 신생아처럼 아랫배가 불룩 나온다. 그래도 20대 때는 하룻밤 자고 나면 쑥 들어가더니, 애 둘 낳고 나서는 항상 마중을 나와 있다. 종아리는 늘씬한데 허벅지는 두껍다. 한 때 치렁거리던 내 머리카락은 이제 스트레스성 탈모에 잦은 염색으로 가늘고 푸석하다.
나는 평생 내 몸에 대해 이런 식으로 냉정한 평가를 내려왔다. 마치 누가 내 몸에 확대경을 들이민 것처럼 부위별(?) 단점을 어마어마하게 부풀려 인식했다. 나는 어깨부터 팔꿈치까지의 맨살을 절대 세상에 드러내지 못했다. 민소매는 똥꼬치마보다 남사스러웠다. 윗옷을 살 때는 항상 배를 기준으로 삼았다. 배가 나와 보이면 무조건 아웃이었다. 아침에 부스스하게 일어나 집 앞 편의점에 나갈 때조차 얼굴에 물칠을 하고 바탕색을 칠한다. 그냥 나갈 거면 캡모자를 푹 눌러쓴다.
<귀여운 여자라는 말보다 지혜로운 여자라는 말을 듣고 싶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책장에는 위와 같은 제목의 얇은 책 한 권이 꽂혀 있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 문장은 내 안에 깊이 남아 왜곡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세상에는 '귀여운 여자'와 '지혜로운 여자'가 존재하고, 나는 귀여운 쪽은 아니니까 똑똑한 쪽으로 살아야겠구나 했었다. 비단 저 책 한 권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면전에 대고 거침없이 이루어지던 외모에 대한 평가들이 한창 예쁘게 커야 할 여자 아이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친척들이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살이 쪘네, 빠졌네, 는 빠지지 않는 인사였다. 작은 아빠는 자기 딸에게 대놓고 넌 얼굴은 안 되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었다. 왜 우리는 그 말에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수긍해 버린 걸까.
사실 내 주변의 여자들도 나 못지 않게 자신의 외모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다. '살 빼야 되는데'는 수십 년째 의미 없는 주술처럼 반복된다. 어차피 안 뺄 거지만 늘 빼야 한다는 부담감은 버리지 못한다. 배를 두드리며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서 부질없는 칼로리 계산을 한다. 얼굴에는 아침저녁으로 기본 네다섯 개의 로션을 두들겨 바르지만 잡티와 주름이 거슬린다. 팔이 가늘면 다리가 두꺼워 고민이고 키가 크면 커서 문제요, 작으면 작아서 문제다. 주기적으로 요가나 필라테스도 등록하고 수영도 배우고 PT도 받는데 거울 앞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
내가 뭐 아이돌이라도 되나? 청순한 여배우라도 되냐고!
연예인들도 시즌에는 관리하고 비시즌에는 자유를 누리는데, 그냥 맑고 밝게 잘 살면 되는 보통의 여자들이 왜 이렇게 피부와 몸매와 얼굴에 집착을 하며 살고 있는 건지 원. 한국 여자들은 피부도 좋고 어려 보이고 날씬하고 고데기도 잘 말고 옷까지 잘 입고 그 와중에 살림하고 시댁 챙기고 애 교육에도 열심이고 나가 돈까지 버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을 슈퍼슈퍼우먼이다. 우리가 그토록 흠모하던 파란 눈에 금발인 여인들조차 한국 여자들의 미용을 따라가는 시대이다. 그런데 나는 거구의 서양 여자들이 검은색 나시에 큰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다니는 게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는지 모른다. 체중이 100킬로가 넘어 보이는데 해변에서는 비키니를 입고 썬텐을 즐기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팔뚝도 못 꺼내 놓는데......
나는 슈퍼우먼 같은 거 하기 싫다. 나의 출생부터 지금까지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자신감과 여유를 갖고 싶을 뿐이다. 얼마 전 짐정리를 하다가 20대에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이 우수수 나와 보게 되었다. 예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팔뚝이니 볼살이니 그 딴 거 전혀 안 보이고, 마냥 예뻤다. 그때도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누가 누가 더 못났나 침을 튀겼었는데, 누가 이쁘다고 하면 손사래를 치며 극구 아니라고 난리였는데, 그 시절의 우리는 어여쁜 청춘이었다.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꽃중년으로 살고 싶다. 남에게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말을 스스로에게 자주 해줘야겠다.
"나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