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밥을 먹고살던 시절, 나는 식탁의 빌런과 같은 존재였다. 분유를 떼고 흰밥을 먹기 시작할 때는 밥을 씹지 않고 쪽쪽 빨아먹었다고 했다. 아니, 이건 너무 적극적인 표현이고 마치 파리지옥 식물이 파리 한 덩이 물고 며칠에 걸쳐 녹여 먹듯, 쌀 알을 입에 물고 세월아 네월아 앉아 있었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는 집을 나서기 직전 최후의 1초까지 밥숟가락을 놓지 않아 매일 아침 심장 쫄깃한 지각 위기 드라마를 찍었다. 서두르라는 엄마의 초조한 목소리를 배경으로 아침 식사 정량을 배에 다 채워 넣을 때까지 밥상머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개근의 영광은 단언컨대 내 어머니의 것이다.
입은 또 얼마나 짧은지, 어려운 시절이었는데도 찬을 가려먹기 일쑤였다. 냉장고에 한 번 들어갔다 온 반찬은 손을 안 대고, 그 자리에서 막 해낸 시금치나물이나 콩나물 무침에만 젓가락을 댔다. 집집마다 아버지가 왕노릇 하던 시대에 우리 집 식탁은 나라는 독재자가 지배하고 있었다. 엄마는 웬수같은 딸이라고 말로는 뭐라고 하면서도 내가 먹고 싶다는 건 항상 다 해주셨다. 엄마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나의 호시절은 완전히 끝나고 말았다. "엄마!" 한 마디에 뜨끈한 떡볶이나 부침개를 먹던 날들은 영영 돌아갈 수 없었다. 엄마 없는 집에 혼자 남아 인터넷을 뒤져가며 먹을거리를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엄마의 요리 재능을 물려받지 못했다. 20년째 매 번 다른 맛의 된장찌개를 끓이는 나를 보면서, 요리는 공부나 피겨스케이팅처럼 재능의 영역이라는 걸 실감한다. 하다 보면 는다는 낭설을 믿고 주방에서 씨름하는 것보다 한 팩에 3천 원 하는 반찬을 사 먹는 게 훨씬 이롭다. 금손 엄마 밑에서 까다로운 기미상궁 노릇을 하며 살아온 덕에 나는 입에 꼭 맞는 반찬 가게를 기어이 잘 찾아낸다. 할 줄은 몰라도 먹을 줄은 안다고나 할까.
학교라는 직장에 뿌리를 내리고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의 식사는 오로지 '생존'을 위한 것이 되고 말았다. 교사가 되어 급식을 먹으니 점심 메뉴 고민은 없지만 식사 시간은 10분 내외에 불과했다. 수업 마치고 급히 내려와 호로록 먹고 급식 지도를 하거나, 그다음 5교시 수업을 하기 위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급히 털어 넣은 재료들은 내 뱃속에서 부대끼며 아우성쳤지만 내게는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지방들이 볼록 존재감을 드러내며 뱃살로 남게 되었다.
어린 자식들을 키우면서 나는 '서서 먹기'와 '대충 먹기'가 몸에 배었다. 앙앙 울어대는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사이사이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입에 털어 넣었다. 아이 이유식은 유기농 야채 6종을 사서 전부 칼질하고 소분했다가 정성스레 끓여 먹였지만, 나는 식은 국에 밥을 말아먹거나 빵과 믹스 커피로 버텼다. 반찬을 사도 꺼내 먹을 기력이 없었다. 내가 뭘 먹는지, 얼마나 먹는지 모르고 10년이 지나니까 염증 덩어리에 과체중 몸뚱아리가 되고 말았다.
우리 엄마가 나를 참 귀하게 키웠다. 나도 우리 엄마 딸일 때는 식은 국이나 밥은 손도 안 댔었다. 참기름의 윤기가 촤르륵 흐르는 새 나물에 새로 지은 밥만 먹었다. 봄이면 들에 나가 여린 쑥을 뜯어 초록향기 가득한 쑥개떡을 한솥 쪄서 내주었고, 직접 반죽한 만두피에 고기 누린내 나지 말라고 정성스레 속재료를 만들어 채웠다. 직접 기름을 채워 호떡도 구워 주고 도너츠도 튀겨 주었다. 내 인생에 가장 호사스러운 시기였지만, 그때는 치킨이나 피자 먹는 날만 기다렸었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부모가 애지중지 키운 장녀 금명이가 하는 말이 있다.
"나한테 막 하지 마세요. 우리 엄마 아빠 울어요."
우리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보면 아무렇게나 먹고사는 딸을 보면서 얼마나 안쓰러워하실까. 당장에 반찬을 해다 주지 못해 멀리 구름 뒤에서도 발을 동동 구를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서서 먹지 않겠다고, 국에 밥을 말아먹지도 않겠다고, 과자나 빵이나 믹스커피를 아무 때나 먹지도 않을 거라고. 청소기 돌리고 빨래를 널고 장난감 정리를 하는 대신 내 몸을 위한 정성스러운 한 끼를 차려 먹는 연습을 한다. 너저분한 거실에 등을 돌리고 샐러드 야채를 꺼내 깨끗이 씻고 물기를 뺀다. 닭가슴살을 전자레인지에 40초 데우면서 사과도 조각조각 자른다. 미리 사 둔 저당 샐러드 소스를 곁들여 이파리 하나하나 아작아작 씹으며 쌉싸름한 맛을 음미한다. 간식은 단백질셰이크에 무가당 두유를 섞어 먹기로 한다. 카페인이 당기는 날은 설탕믹스커피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른다.
나를 위한 식탁을 차리고 보니 이제야 내가 나를 좀 아껴주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한 한 끼를 차려 먹는 게 뭐 그리 어렵고 고단한지, 나를 위한 상차림에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식 밥 한 끼 못 챙겨주면 그렇게 쩔쩔매면서, 자신에게는 왜 이리 박하게 구는지 모른다. 부뚜막 곁에서 물에 밥 말아먹던 우리 엄마들이 우리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귀하게 키워 놨는데 말이다.
둘째 아이가 과자 봉지를 뜯어 한 주먹 꺼내 들고 와서 "엄마!! 아~~~" 한다. 나는 빙긋이 웃으며 말한다.
"어쩌지? 엄마 다이어트 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