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new life
요즘 세수를 할 때마다 거울을 한참 들여다본다. 살짝 웃으며 주름진 곳을 확인하거나 고개를 돌려 가며 얼굴을 꼼꼼히 살핀다. 마흔 넘은 내 얼굴이 낯설어 그렇다. 아줌마, 누구 엄마, 선생님, 하고 불리는 것도 영 적응이 안 된다. 이제는 뒷모습조차 늙어버린 것 같아 서글프다. 나는 내 청춘과 제대로 작별하지 못했다. 품에서 아이 둘을 키워내는 동안 젊고 활기차던 나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늘 동안이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애 둘 키우고 마흔 넘으니 어느 각도로 봐도 그냥 내 나이로 보인다. 여전히 핑크색을 좋아하고 샤랄라 원피스를 즐겨 입고 미니스커트도 잘 입는데, 아무래도 단정한 옷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환한 색 립스틱을 바르니 입술만 동동 떠다니고, 봄 분위기 내려고 볼터치를 하니까 피에로 분장 같이 보인다.
사람들이 사십춘기니 뭐니 할 때도 나는 어린 자식들을 돌보느라 혼이 나가서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인생에서 저절로 지나가는 것은 없나 보다. 단지 조금 지연되었을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내 인생의 목표는 오로지 '행복한 가족 만들기'였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담뿍 주고, 남편을 군자(?)로 만들고, 현숙한 여인이 되는 것만이 전부였다. 아, 쓰다 보니 너무 열받는다. 가정생활이라는 게 내가 없어져야 행복해지는 건 줄 알았다. 내가 참고 또 참고 또또 참으면 좋은 날이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남은 것은 몸과 마음의 지독한 병뿐이다.
나는 내 남편도 사랑하고, 나를 괴롭게 하는 남편의 가족도 사랑하고, 내 아이들도 사랑하고, 내 친구들도 사랑하고, 교회에서 만난 모난 사람들도 사랑하고, 5년 전이나 10년 전에 나에게 잘 해준 사람도 잊지 못해 마음에 품고 살았다. 그런 내가 끌어안지 못하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왜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느냐고 몰아붙이면서, 의지와 정신력으로 다 이겨낼 수 있다고 채근하면서, 너의 취향은 너무 유치하다고 무시하면서, 너는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고 구박하면서, 여태껏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잘 살아온 나를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
내가 병들었다는 것조차 몰랐다.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숨을 몰아쉬면서도, 일어서 있지를 못해 내내 앉아 수업을 하면서도, 손잡이 없이 계단 두 칸을 오르지 못할 만큼 무력하면서도, 나를 모함하는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열 손가락 마디마디 통증이 계속되고 발을 내딛을 수 없을 만큼 발바닥이 아려와도, 나는 아무것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신은 이런 내가 가여웠는지, 내가 이고 지고 가는 짐들을 강제로 앗아 가셨다. 신이 할 일까지 내가 할 필요는 없다고, 너는 그냥 너로 살면 된다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주저앉은 내게 조용히 일러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제대로 살아 보겠노라고 마음을 먹었다. 문제는 그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은 진작 마무리 지은 줄 알았는데, 나의 사춘기는 마흔 넘어 한창이다.
나를 사랑하며 사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서툴겠지만 초보가 다 그런 거 아닌가.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느냐고 닦달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 결심만으로도 벌써 설렌다. 내가 좋아했던 뮤지컬 넘버의 제목이 떠오른다.
A new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