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척'을 안 한다. 백화점에 갈 때도 헐렁하게 입고 편안하게 나서고, 두꺼운 대학 전공교재에 큼지막하게 '이화여자대학교'라고 쓰지도 않고, 동사무소 가서 악다구니 쓰며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근거와 절차를 확인한다. 돈 있는 척, 똑똑한 척, 센 척을 하면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인생은 대체 어떻게 살 수 있는 걸까?
나는 일찌감치 '척'의 달인이 되는 길로 들어섰다. 사시사철 돈이 없는 집에서 크다 보니, 나가면 자존심 구길 일 투성이었다. 쉬는 시간에 과자를 가져온 친구가 봉지를 트면 반 아이들이 모두 우르르 달려드는데, 나는 일부러 관심 없는 척 교과서를 펼쳤다. 그 뒤에 어느 자리를 가도 내 앞에 놓인 접시 외에는 손을 뻗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관계에 대한 두려움에 부딪쳤다. 그래서 새 학기 첫날 친구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조간신문을 펼치며 굳은 얼굴을 감췄다. 아무리 뜨겁게 사랑한 연인이라도 절대 매달리는 법 없이 단번에 헤어졌다. 조금이라도 미지근해진다 싶으면 적당한 이유를 대고 먼저 이별을 고했다. 원래 사랑은 변하는 거라며 쿨한 척을 해놓고 두고두고 혼자 아팠다.
나의 가족, 나의 형편,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끌어안을 자신이 없었다. 내가 속한 세상에서 불리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가족 소개서에는 훌륭한 아버지와 현모양처 어머니로 글을 적었고, 최대한 남들과 비슷해 보이려고 애를 썼다. 유행을 쫓아가지는 않더라고 후지게 보이지는 않으려고 했다. 무엇보다 내 안에 솟는 감정을 그대로 꺼내지 않고 반드시 필터링을 거쳤다. 참을 만하면 최대한 참고, 못 참겠으면 도망갔다.
너무 오랫동안 괜찮은 척을 하며 살았다. 그랬더니 '내가 되고 싶은 나'만 활개를 치며 살고, '진짜 나'는 꽁꽁 숨어 버려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꼭꼭 싼 포장지 같은 인생은 벗겨 내면 그 안에 순수한 알맹이로 존재할 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남들이 가진 거 나도 가져야 안심이 되고, 남들이 해본 거 나도 다 해봐야 아쉽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남들 같은 인생'이라는 허상을 걷어 내야 비로소 제대로 살 수 있을 듯싶다.
지금까지 애를 쓰며 살아온 날들을 부정하거나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그 시절의 내가 선택한 최선의 인생이었을 테니 말이다. 이 세상에서 예쁨 받으며 살고 싶어서 애를 쓴 시간들이었다. 미운오리새끼가 백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태생부터 백조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버둥거리지 말고 그냥 나 자신을 아껴주며 살고 싶다. 나의 소유, 나의 취향, 나의 성취로 스스로를 판단하지 말고 그냥 백조로 유유히 날개를 펴고 싶다.
목적 없이 거리를 걸으며 꽃과 잎을 들여다본다.
아이들 몰래 숨겨 놓은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먹으며 낄낄거린다.
새벽까지 드라마를 실컷 보는 것도 즐겁고 다음 날 낮잠까지 잘 수 있으면 더 즐겁다.
봄을 맞아 새로 꺼낸 몇 벌의 옷과 두어 가지 색의 립스틱이 나를 설레게 한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다가올 인생을 기대하게 만든다.
소소한 자유와 사소한 행복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