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쉬지 못하는 걸로 유명하다. 쉬거나 놀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엄마 젖을 떼고 나면 아이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생활과 더불어 동네 학원 스케줄이 생긴다. 놀이터에 나가도 같이 뛰어다닐 아이들이 별로 없고, 그나마 한참 재미있어질 때 폰만 보던 엄마가 빨리 집에 가자며 끌고 간다. 학교에 입학하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입시를 향한 불안한 열차에 탑승하게 된다.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모두 학원에 다니면서 눈칫밥을 먹느라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주말이나 휴일에라도 하루 종일 pc게임을 하거나 시내를 싸돌아다니고 싶지만 부모는 그 꼴을 두고 보지 못한다.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해도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조바심을 떨칠 수 없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 현실은 더욱 무거워진다.
나 역시 어릴 때는 어른 눈치를 보느라 떳떳하게 놀 수가 없었다. 공부 안 하냐? 숙제했냐? 하는 말에 늘 주눅이 들었다. 엄마가 나간 사이 책상 위에는 항상 영어 단어장이나 두꺼운 명작 소설을 펼쳐 놓았다. 그러고 나서 온종일 텔레비전을 보고 엄마가 설정해 놓은 채널과 리모컨의 위치에 맞춰 감쪽같은 연출로 마무리를 했다. 이불속에는 대여점에서 빌려 온 슬램덩크 시리즈나 꽃보다 남자 시리즈를 감춰 두었다. 그러니 엄마가 방문을 열면 노크 좀 하라며 막 소리를 지르고 내 방에 들어오지 말라며 난리를 쳤다.
대학에 들어가 남들이 학점 관리하고 취업 준비할 때 마음을 못 잡고 헤매는 나를 얼마나 미워했는지 모른다. 스물몇 살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덩그러니 혼자 살아남아야 했던 나 자신을 불성실하고 한심한 인간으로 몰아붙였다. 결혼하고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전쟁같이 살면서도, 그 와중에 독서나 글쓰기 같은 고상한(?) 작업을 하지 않는 스스로를 한심하게 생각했다. 잠도 못 자고 밥도 잘 못 챙겨 먹고 마음 편히 외출 한 번을 못하는 시간이 끝없이 계속되었지만, 쉬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런 삶이 내게는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쉼'은 고래의 호흡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거대하고 튼튼한 고래라도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지 않으면 물속에서 살아가지 못한다. 고래가 물속에서 생명력 있게 헤엄칠 수 있는 것은 물 밖으로 튀어 올라 숨을 쉬는 몇 분의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거센 해류가 쉼 없이 휘몰아치는 깊고 망망한 인생을 헤쳐나가면서 빛을 얻는 휴식의 순간이 없다면 어떻게 힘을 갖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낮잠 자기
이불 휘감고 유튜브 보기
드라마 시리즈 실컷 보기
동네 산책하기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라테 즐기기
다이소에서 쇼핑하기
설거지 다음 날로 미루기
하늘하늘 치마 입고 꽃구경 가기
카드값 확인하지 않기
이 모든 일을 하고도 후회하거나 죄책감 갖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