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큰 사람은 삶에 만족하기 어렵다. 인생의 적절한 목표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괴로움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나 첫걸음마를 옮겼을 때, 가나라다와 ABCD를 익혔을 때, 처음 두 발 자전거 타기에 성공했을 때, 온 세상이 나를 향해 박수를 치는 것 같았다.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의기양양했고,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자신감이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바뀌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시작하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친구들을 만나고, 앞으로 커서 뭐가 될 거냐는 집요한 질문을 받으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세상에는 높은 성을 짓고 사는 대단한 부자들도 있고, 탁월한 감각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들도 있고,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잘생긴 외모를 지닌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죽어라 노력해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똑똑한 사람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월말고사를 보며 매 달 성적표를 받아 보았다.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기를 하는 학교에서 겨우 살아남아 대학을 갔더니 서울대부터 지방대까지 이미 등급이 다 매겨져 있었다. 내가 속한 대학이 곧 나의 수준이 되었다. 서울에서 어느 지하철역에서 내리느냐가 중요했다. 친구는 대학교 이름이 붙은 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삼수 끝에 학교를 옮겼다. 열등감과 싸우며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취업 순서와 연봉에 따라 지위가 달라졌다. 그즈음에 연락이 끊어지는 이들이 많아졌다. 한참 후에 청첩장이나 받아서 결혼식장에 모이게 되자 이번에는 남편의 직업과 신혼집 위치가 입방아에 올랐다.
난 뭘 할 수 있지?
내가 하찮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우리 부모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고, 집안도 변변치 않고, 눈에 띌 만큼 엄청난 재주는 없지만 사소한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책도 읽고, 사람도 사귀고, 강연도 듣고, 여기저기 다니며 혹시라도 놓쳤을지 모르는 '특별함'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인간은 마음 저 깊은 곳에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자 하는 갈망이 존재한다. 허겁지겁 남들만큼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동안에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 인생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인생 역전의 기회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사랑에 기대기도 한다. 인생은 내게 선명한 답을 주지 않고, 그러는 사이에 야속하게 세월이 흘러 앞날에 대한 기대보다는 과거의 추억을 파먹고 사는 내리막길에 들어서버리는 것이다.
세상이 내게 매긴 점수표는 사실 허상이고, 내 생의 가치는 저울로 무게를 달듯 계량화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내가 우주의 먼지로 사라져 버릴 하찮은 존재라 해도, 내가 태어나 비틀거리며 걸어온 이 길은 유일무이한 나만의 것이기에 소중하고 특별한 것이다. 어쩌면 인생에 업적과 성취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과 안심할 수 있는 소유에 대한 강박이 자꾸 나를 작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살아 있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어쩌면 내일도 살아 있어 새로운 삶을 향해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소한 기대가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는 책의 제목처럼, 나의 인생이 고요한 행복으로 가득 차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