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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May 14. 2024

칠순 엄마, 소녀로 살다

엄마가 계속 일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칠순을 넘긴 우리 엄마는 소녀 같다. 여전히.

현실은 시골 할머니지만 마음만은 딸 둘을 합친 것보다 여리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고 길러내고 사진 찍으며 마음에 담아둔다.
엄마의 소녀감성은 *튜브에 온갖 아이템으로 영상을 올려 인기를 끌고 있다는 캐릭터와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마음은 나이 들지 않을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그 어떤 사람에게서 보다 더 많이 느끼게 해 준 이가 바로 엄마다. 심지어 수십 년을, 수 백명의 아이들과 지낸 나보다 훨씬 순수한 동심을 간직하고 있어서 놀랄 때가 많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요즘은 날씨 변덕이 심하고 계절을 종잡기도 어려워졌지만 전에는 늘 끔찍한 가뭄과 야속한 장마가 반복적으로 괴롭히던 때가 있었다. 엄마는 항상 어떤 생명들을 길러냈고 늘 사랑했으며 그 해에도 물론 그랬다. 가뭄을 심하게 보내던 어느 날의 일이다. 엄마는 외출에서 돌아와 물을 한 잔 마시고는 곧장 애정하는 대상을 찾았다. 가장 시원한 물을 준비하여,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햇빛도 세고 목도 마른데 참고 견디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니? 얼른 시원한 물 먹고 힘 내라~."

사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엄마에게 사랑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식물에게도 그런 줄은, 그 마음을 말로 내놓는 것은 처음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날 엄마의 애정 어린 말과 행동을 받은 대상은 텃밭에 있는 상추였다. 온갖 희로애락을 함께 한 반려동물이나 값비싼 반려식물도 아닌 상추 말이다. 텃밭이 있는 이라면 상추는 소중하고 아끼는 작물이라기보다는 흔한 작물이라는 생각에 동의할 것 같다. 게다가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이에게 상추란 마트에서 쉽게 사 먹을 있는 몇 장의 잎채소에 불과할지 모른다. 물론 나도 엄마의 애정 어린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상추 잎, 쪽파 뿌리를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엄마의 말을 들은 이후 엄마에게 받은 어떤 식재료도 버릴 수 없게 되었다. 엄마에게 하찮은 생명은 없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온 정성을 다 쏟아 길러냈음을 처음으로 목격! 하고 나니 더 이상 아무것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촌락에도 종류가 있다고 가르친다. 농촌도 작물과 시기에 따라 엄청 다른데 아무튼 나의 시골집은 농촌인데 밭농사 위주다. 그래서 가뜩이나 일과 친하지 않은 아빠와 달리 거의 모든 밭의 일은 엄마몫이었다. 농사의 규모가 많든 적든 그게 문제가 아니다. 농촌의 일이란 날씨와 절기에 따라 끝도 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아무튼 그렇게 쉬지 않고 바쁜 농사일을 해오면서도 내 엄마는 집 안팎의 꽃밭을 가꾸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잡초를 뽑아주고 가지를 쳐주고 열심히 포기를 나누어 준다. 그리하여 집을 찾는 이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그 바쁜 시골 일은 언제 하고, 꽃밭은 꽃밭대로 언제 이렇게 이쁘게 가꾸는 거야?"

이모도, 처음 찾은 손님들도 한 마디씩 하는 그 말속에 엄마의 고단함을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그래서 말려도 보았다.



그런데 요즘에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엄마가 꽃밭 가꾸는 일을, 작물들을 사랑하는 일을 말리는 것은 어쩌면 엄마에게서 마음의 한 귀퉁이를 허락 없이 끄집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내 엄마가 사랑하는 것은 시골집의 꽃밭이며, 노을이 지는 마을 어귀의 풍경이라는 것을 안다. 그곳에서 길러내어 잘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식들, 손주들의 안부인사임도 안다. 엄마는 이 모든 것들을 온 마음을 다하여 아름답고 안녕하기를 바라며 사는 일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그립다. 이때쯤 한창 예쁠 낮달맞이꽃이 핀 엄마의 꽃밭이, 그 보다 더 소녀 같은 얼굴로 나이 들고 있는 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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