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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May 28. 2024

브런치 작가님께 댓글을 달다가

브런치 체험 6. 걸음마도 안 뗐는데 마라톤을

브런치 작가로 살기 시작한 지 반년이 되어가는 오늘, 청년 클레어 님의 글에 댓글을 남기고 오는 길이다.



처음에 작가로 선정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여러 단계의 심리 변화를 겪어 보았다.

1단계,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믿기지 않아 기뻐했다. 누구든 만나는 이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시기였다. 이때의 내 마음 상태를 낱말로 표현하자면 '희열'이었다.

2단계, 의욕이 넘쳐나서 온갖 것들이 글감으로 보이고, 들리고, 맡아졌다. 이 세상이 가득 차 있는 느낌으로 살 수 있는 특별한 기간이었다. 매일 '풍족하다'는 생각으로 잠들고 깨어났다.

3단계, 초보 작가를 위한 브런치의 가불이 있던 때다. 앞으로 코 꿰어 일 잘하라는 의미로 메인에 떡하니 내 글을 등극시켜 준 것이다. 그 후 알고리즘의 흐름을 탔는지 내 글도, 솟아오르던 조회수도 모든 것이 '생경하다'라고 느껴졌다. 내 생각과 어휘와 문장들이 연재 계획보다 여유 있게 장전되어 있던 시기라 명령만 있다면 나는 쏟아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의지를 다지는 기분도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4단계, 조바심이 생기는 단계를 맞았다. 조회수가  많은 적이 있었으니 그 후로 다시 찾아올 다수의 독자들을 위해 좋은 글로  대접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축복인 줄 알았던 가불의 뒷감당은 원래 더 길고 버거운 법이다. 글도 찾는 이도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늘려가던 구독자(=작가님들)의 글에 드나들며 오히려 내가 위축되었다. 이 때는 그 유명한 마음의 '자괴감'이 몰려왔다.

5단계, 자괴감으로 읽어 본 훌륭한 글들과 재치 있는 댓글들, 그리고 지치지 않는 에너지의 작가님들에게서 일종의 대피를 하는 시기가 왔다. 비슷한 소재와 한결같이 담담하기만 한 (나 자신의 글을 평가하자면) 내 글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던 것이다. 조회수, 댓글 수, 이런 것들보다 답답하게도 이상 아무에게도  생각과 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내 주변 사람들, 매일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은 내 글의 url이나 앱을 모른다. 심지어 내가 브런치 작가인 줄도 모르는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수렴'하게 되었다.



6단계, 그리고 얼마 후에는 내가 사랑하는 노래, 마야의 '나를 외치다'의 가사처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맞았다. 수많은 선배 작가님들이 위의 단계들에 대해, 좌절과 재기에 대해 조언해 주시는 글을 읽었다. 모두들 눈에 보이는 숫자가 아니라 내 마음과 내 자판, 내 끈기를 믿고 이 길을 가보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한동안 나는 '초연'해졌다. 거짓말처럼 아무 숫자도 보이지 않고 담담히 글을 쓰며 감사하게 되었다.

7단계, 식물을 기를 때로 비유하면 브런치 작가로 지내는 것은 씨앗 뿌리기부터였다. 그런데 이제 막 싹이 날 무렵에 꽃이 피는 줄 착각을 하는 바람에 어긋난 것 같다. 씨앗을 뿌리고 한참을 기다려서야 잎이 돋고, 줄기가 굵어진다는 것. 씨앗에서 돋아난 첫 싹이 사라지고 나서야 꽃을 피울 때가 오고, 그 화려한 꽃조차 또 지고 나서야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나는 잊고 살았던 것이다. '득도'라도 한 듯 느긋하게 글 하나, 생각 하나를 정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8단계, 이것은 컨디션 탓인가 실제 상황인가 기분 탓인가.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가신 소중한 작가님과 독자님들의 글을 차근차근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글에 따라오는 댓글에서 나누는 글이 아니라 그랬을까. 나는, 열심히 읽고 사유하고 다른 이를 돌아보는 소중한 눈길을 가진 그분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댓글마저 풍요로운 청년 클레어 작가님의 글에 더욱 진심이 담긴 존경과 선망의 마음으로 이렇게 쓰고 돌아왔다. 그랬더니 이 글 한 귀퉁이를 쓰는 힘이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감사한 하루다. 아니, 살아온 반백 년 못지않게 인생을 배우는 반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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