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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Jun 11. 2024

아는 언니처럼, 친한 동생처럼

김자매(엄마와 이모들)+@

칠순이 지난 내 엄마는 칠 남매 중 큰딸로 태어났다. 이모들은 두 명인데 큰 이모는 나와 띠동갑, 작은 이모는 심지어 아홉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내 엄마는 일찍 결혼을 했고, 이모들은 엄마와는 떨어져 다른 지역에서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했다. 그럼으로써 안 그래도 나이차가 나는 그녀들은 아주 어릴 적을 제외하고는 함께 지낸 시간이 무척이나 짧았다.

결국 김자매님들은 다른 자매들처럼 아기자기했다가 금세 토라지고 깔깔댔다가도 다투고 다시 다정하게 팔짱 끼는 흔한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몸과 마음이 쇠약해지셨다.



김자매님들은 연세가 들어가는 그녀들의 엄마와 병약해지는 아빠를 살피느라 고군분투했다. 그녀들이 지나온 어려운 살림살이에 대해, 자녀들을 기르느라 애썼던 날들에 대해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하려는 찰나였다. 다른 중년의 여성들이 그렇듯 숨을 돌리려는 이 소중한 시간에 안타깝게도 다시 온 마음을 다해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그래도 그녀들의 삶에 힘든 고개만큼이나 배움이 많았던 터라 지혜롭게 서로 의지하며 이 시간을 잘 지내고 있다. 젊고 예쁜 날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나 시간의 틈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게 아주 예쁘게 말이다. 칠순부터 예순을 전후로 한 이 김자매님들이 노을처럼 자매의 정을 쌓는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변화가 하나 생겼다.



분명 딸이었고, 조카였던 불혹의 여자 하나가 합류하게 된 사연이다. 그 여자 또한 쉽지 않은 젊은 날을 보냈고 지금은 성인이 된 자녀와 남편으로부터 자유로울 무렵이 되었기에 가능했을 거다. 내 엄마만큼이나 이모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나는 어느새 쉽게 녹아들었다.

엄마이고 이모들로 구성된 김자매님들 사이에 덤이 하나 생겼다. 나는 이제 딸이나 조카가 아니라 같이 나이 들어가는 막냇동생 같은 존재가 되었다.



작년에 나는 그녀들 앞에서 펑펑 울었고, 시원하게 누군가를 욕해댔으며 다독다독 위로를 받았다. 우리 중 누군가는 가난한 젊은 날이나, 벼룩의 간을 빼먹은 나쁜 이를 이야기했다. 힘들게 옮겨다닌 일자리와 병마에 대해 훌쩍이며 각자의 마음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무도 챙기지 않고 각자 자기 자신을 느끼며 코스모스 꽃밭에 파묻혔다. 두 팔 벌려 갈대밭 사이를 걸었고 깔깔대며 빵을 나누어 먹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시큰하게 꿈같은 가을 하루볕을 즐겼다. 그리고는 몇 달이 지나 김장 김치를 담그는 날 웃으며 다시 만났다.



동네에서 가까이 지내는 아는 언니, 사회생활을 하며 친해진 동생처럼 우리는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관심사도, 업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공통점이 없는 것 같지만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살아오며 맞은 비와 바람과 눈과 햇살에 대하여.

그 안타까움도 짧음도, 그렇기에 더 절묘하게 아름답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은 나는 김자매님+@가 된 이 날들에 감사하며 마음속 코스모스 밭을 거닐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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