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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May 21. 2024

먼저 사람이 되려고

쑥과 마늘에 대한 단상

이번 봄, 쑥과 마늘을 많이 먹었다. 단군신화를 되새길 때도 아닌데 웅녀의 쑥과 마늘을 떠올렸고 심지어 맛나게 먹기까지 했다.



쑥은 마트에서 사 먹는 경우도 많지만 아무래도 '쑥'이라는 말에는 '캔다.' '뜯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쑥을 캐거나 뜯으려면 적어도 어느 풀밭이나 숲을 찾아야 하고 굳이 쪼그려 앉아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나는 그런 움직임들이 싫지 않았다. 애초에 쑥을 먹고 싶거나 먹어야겠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맥을 같이하는 셈이겠지.

어쩌면 아들딸 또래의 젊은이 혹은, 82년생 김지영들과 이미 온 90년 대생들 또한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그들 중 쑥과 마늘을 먹기 위해 이 정도의 의지를 가졌거나 실천력을 보이는 이가 얼마나 있으랴.



육식을 멀리 하거나 채식과 생식을 오래 하는 이들은 모든 식재료에 본연의 맛이 있다고 말한다. 조리를 했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한 단맛과 감칠맛, 모든 맛들이 분명 숨어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의아했던 때가 있었다. 쑥을 먹으며 특히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작고도 작은 시골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 나의 기억으로도 쑥은 손에 꼽는 좋은 향이지만 쓴맛을 가진 풀의 종류, 나물 정도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올해 먹어본 쑥은 나에게 빼어난 향뿐만 아니라 단맛까지도 감지하게 했다. 깊은 숲 속의 쑥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지인의 시골집 앞 논둑에서 뜯은 쑥이었다. 쑥을 뜯을 때 벌써부터 등으로 꽂히는 듯한 햇살과 흩날리는 벚꽃 잎 때문에 상기되었던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행복한 기억만으로 쑥이 달기에는 내 미각은 너무나 진실되게 단맛을 향하고 있었다.



한편, 마늘은 내가 아주 사랑하는 식재료 중 하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쯤으로 보기에는 조리 전의 마늘도 무척 사랑하는 편이다. 양념으로서 다른 재료와 섞이거나 열을 이용하여 조리한 경우가 아니라 '생'에 해당하는 마늘을 끊기가 어렵다.

느닷없이 하나의 맛잘알 비결을 인심 써보려 한다. 주인공은 바로 마늘치킨이다. 향만 첨가하거나 아주 조금 들어간 소스를 내세운 브랜드들의 흔한 마늘치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갓 튀겨낸 후라이드 치킨이 기본이다. 치킨이 뜨거울수록 마늘치킨의 진가가 더 잘 나타난다. 여기에 다진 생마늘을 듬뿍 올려 먹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조금 찍어 먹다가 취향에 따라 소금이나 후추를 추가하기도 한다. 내가 전파하여 이렇게 먹어본 이들은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물론 나도 생마늘의 알싸함이나 심지어 가슴을 쥐어짜듯 매운맛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삼겹살을 야채에 쌀 때 굽기 전의 생마늘을 넣으면서 생각했다. 치킨 상자를 펼치면서 다진 마늘통을 냉장고에서 꺼내오면서도 생마늘을 사랑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바로 초월이었다. 마늘의 매운맛을 감당하고라도 식재료와 잘 조화시키면 미식의 새로운 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그 대상이 '고기'라서 그렇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이가 있다면 받아들인다. '인생이 고기서 고기다.'라고 말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봄의 향기를 전하고 느낄 수 있다면 기꺼이 수고로운 쪼그려앉음 정도는 가족을 위해 타인을 위해 해내는 초월!



살다 보면 매운맛의 시기도 지나치고 쓴맛의 경험도 가지게 된다. 그것들을 잘 보내온 이들만이 아는 감사한 맛, 안도의 맛이 있다고 믿는다.

아직 인생을 초월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으며 견디는 법을 알아간다. 이 봄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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