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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May 07. 2024

감자탕을 끓이다가

반면교사 자녀 교육

집에서 감자탕을 끓여 먹던 날이 기억난다. 식당에서 먹어 본 메뉴고 TV에서 수없이 맛집들의 비법을 알려주었으며 마침 집에도 커다란 솥이 놀고 있었다. 시래깃국과 묵은지 마니아가 사는 집이라 얼린 무청이며 묵은지, 감자도 충분했다. 감자탕을 각오한 마음에 걸맞게 들깻가루 정도는 갖춘 살림이었으므로 돼지뼈와 깻잎만 사서 손질하면 된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감자탕은 글만큼이나 미리 생각해야 하고 단계별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긴 하다. 그래도 찬물에 여러 번 핏물을 빼거나 뼈를 데쳐내는 동안 이것저것 어울리는 반찬이나 상차림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재료를 모두 넣고 푹 고아낼 때는 푸짐하게 나눠먹을 생각에 흐뭇하기까지 하다. 고생했다, 덕분에 맛있다 하면 될 일을 알맹이 쏙 빼내고 다음에는 사 먹자,를 그릇째 비워내며 말하는 이는 잠시 잊는 것은 하나의 비법이다.  



기회가 오더라도 준비된 자만이 잡는다는 말을 자주 해주던 선배님과, 그 말을 들었던 찬란한 젊은 날이 떠올랐다. 정작 당시의 나는 찬란한 시간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는 기억도 되살아났다. 

직장과 일상 만으로 버거운 나이에 육아와 아픈 가족, 시험을 준비하는 가족을 돌보는 모든 일이 겹쳐져 있다는 데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더 빛날 수 있는 방법을 논하거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사치처럼 느껴졌다. 사치스러운 행동의 주인공을 시기하고 미워했다는 것 또한 고백한다. 돌아보면 마음에도 생활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만약 그때 내 힘든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고 회복하는 방법을 찾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 일상에서 투덜거리지 않고 벗어나거나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무엇이든 준비를 했다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하며 나이 들고 있다.

어쩌다 문득 감자탕을 끓이고 싶었는데 만약 재료가 잘 갖추어지지 못했다면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재료가 있더라도 요리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거나 실행할 수 없었다면 그날의 만족스러운 식사와 평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 아이들이, 젊은 날 준비하지 못하고 방법을 모르던 내 나이 무렵이 되면 언젠가 말해주련다. 그날의 갑작스러운 실행을 가능케 한 이유였던 '준비'가 우리 생활에서 얼마나 든든한 덕목인지. 물론 준비되어 있으면서도 실행을 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운전면허증을 따놓지도 않은 사람이 운전자보험을 들지는 않아야 해. 천천히 한 걸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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