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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Jan 19. 2024

프롤로그, 아픈 선생님

평범한 어느 교사의 이야기

허리 통증이 다시 도지는 때가 있다. 두 해 전 겨울 출근길에 짧은 순간 아득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두 번째 교통사고를 당한 후였다.  번째와 사뭇 달랐다. 단순하고 흔한 낱말 '접촉 사고'로 분류되거나 명명되기에는 너무 큰 충격으로 트럭에 들이 받혔다. 3년 정든 차를 떠나보내고 급히 신청한 새 차가 나올 때까지 한겨울 대중교통을 이용해 치료받으러 다니는 것도 할 짓이 못 되었다. 그래도 악착같이 치료받으며 방학이 끝나갔다.

새 학기와 함께 지금의 학교로 출근을 시작했다. 몸은 낯설고 마음은 더 설었다. 많은 것이 변했고 모든 것이 힘들었다. 사고를 겪은 지 얼마 안 된 나의 서사에 대해 누군가 묻지 않았 일부러 말하고 다닐 일은 더욱 아니었다. 그래서 새 학교의 구성원들은 사고에 대해, 내 몸 상태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학교에 갓 입학한 여덟 살 우리 반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전히 밝고 명랑하게 뛰었고 손이 가는 크고 작은 돌봄이 필요했다. 만들기나 종이접기 수업이라도 할 때면 쏟아지는 질문과 여기저기 도움을 청하는 소리에 이끌려 교실을 돌고 돌았다. 가끔 교실이나 복도에 토하는 아이들이 생기면 엎드려 닦았다. 운동장이나 강당의 놀이 수업시간에는 땀이 후끈 나는 통증이 되살아났다. 보건실과  급식실, 학급텃밭까지 오가느라 몇 번씩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버거웠다. 때로 사물함 앞에서 칠판사이조차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아파올 때도 있었다.



결국 병가를 신청했다. '병가'라고 썼지만 '쉰다'라고 불리게 될까 봐 결정을 내리기도 어려웠다. 나의 힘듦을 서류 서너 장으로만 말할 수 있는 현실이 속상하기도 했다.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심사분류, 결정에 걸린 시간이 무색하리만큼 안타깝고 아쉬운 지점이 너무 많았다. 긴급 보결강사 제도나 더 촘촘한 행정지원이 있다면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과 교육권을 위해 부담임 제도 같은 대안이 생긴다면 참 좋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하던 때이기도 했다. 

동학년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에게 갖가지 이유로 미안했고, 무엇보다 스물네 명 우리 반 학생들이 눈에 밟혔다. 병가 전에 동학년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자료는 모두 나누었다. 아프다는 이유로 배려하고 이해해 주신 고마운 선배, 동료 선생님들이었다. 학부모들에게도 다듬고 다듬은 글로 안내하고 양해를 구했다.

병가가 시작되고 더 열심히 치료를 받았다. 돌아올 때는 아프지 말라는 누군가의 말, 그 묘한 뉘앙스가 떠올라서는 아니었다. 허용된 병가일수를 소진해 버렸기 때문도 아니었다. 양, 한방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소문난 개인 경락까지 찾아 병행하며 꼬박꼬박 열심히 찾아다녔다. 통증이 심해질까 무서워 운동도 멀리했는데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아 무리를 해보기도 했다. 운동을 해도 안 해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적당히 포기하고 살 만큼의 통증이라면 이제 안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구나 아프면 치료받고 회복해야 한다.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당연한 도리라고

2023년에는 유독 많은 선생님들이 아팠다. 아니다, 그전에도 지금도 아프다. 다만 더 견디지 못하고 터져 나왔을 뿐. 교통사고 이후 나는 또 다른 이유로 마음 아픈 일을 겪었다. 몹시 아팠다. 교사가 아팠다. 회복해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버티기 힘든 어떠한 시기나 아픔을 마주한 교사가 있다면 어떻게든 자신의 치유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그것이 맞다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교사가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교육이 바로 서고 교실과 교육이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이다.    



- 날씨만큼 눈시울이 뜨거웠던 2023년 여름과, 마음 시린 가을 끝에서 -

비록 바람이 불고 있지만

#회복 #병가 #출근 #사고 #치료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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