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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Apr 16. 2024

은밀하게 위대하게 입금이 되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음하하하하!!!!! 모르는 돈이 입금되려고 일진이 그렇게 사나웠었나? 통장에 떡하니 적지 않은 돈이 입금되었다. 일단 0을 향해 거꾸러지던 월급 직전의 날이었고, 곧 마이너스를 향해 질주하려던 나의 계좌에 모르는 돈이란! 곧 오아시스 같은 의미였다. 일단 웃음부터 나왔다. 아잉~이런 결말이라면 일진 나쁜 것 정도야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그러나 때가 어느 때인가? 세월이 하 수상하니 의심부터 해야 했다. 시키지 않은 택배라도 잘못 뜯었다가는 무슨 독가스를 흡입하게 될지도 모르고, 땅에 떨어진 낯선 물건을 함부로 만졌다가는 절도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마약이나 다른 범죄자들이 무작위로 자금을 흩었다가 다시 모으는 수법에 내가 운 나쁘게 걸려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놔~상상력이 너무 풍부한 건가? 이 와중에 낮의 일로 정신줄을 놓은 건가? 범죄 조직의 자금력을 우습게 알고 몇 십억, 조 단위도 아닌 돈에 너~~무 내 생각이 멀리 나갔다가 이내 돌아오긴 했다. 아무튼 무서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으므로 몇 분이 지나면서 겁이 났다. 

일진이 사나운 이유는 오늘 발생한 사건 때문이었다. 세상의 온갖 쓴 물을 다 맛본 어른들과 다른 직장인이 볼 때는 별 것 아닌 일이지만 내 기준으로는 다르다. 자식일에 물불 안 가리고 나서는 부모를 공동체로 두고 운영해야 하는 내 일과 일터에서 볼 때 큰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아무튼 오늘 일로 인해 상담전화와 기록이 한참 쌓여있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허술해지는 기억력 때문에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최대한 상세하게 기록을 하고, 연락을 하고, 당사자들로부터 인정하고 재발방지 의지를 확인한 뒤, 뒷일이 터지기 전에 도움의 손길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했다. 이렇게 바쁜데 제출해야 할 서류도 몇 가지나 되었다. 



처리해야 할 일과 독촉의 메시지들을 확인하는 사이사이 머리를 굴려가며 입금자를 짐작해 보았다. 그리하여 내 계좌에 은밀하고 위대하게 들어온 돈의 출처를 밝히기까지는 매우 짧고 간헐적인 몇 차례의 시도가 지나고 나서야 가능했다. 그 몇 차례의 오답을 거치는 중간중간 행복회로가 돌고 있었다.

통장에 찍힌 입금메모의 활자로 보아 나의 기대치는 한껏 높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 전 낸 공모 주체와 입금 기록은 충분히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관계였기 때문이다. 공모 계획에는 심지어 심사결과 발표일이 '일'단위로 나오지 않고 '4월'이라고만 되어 있었고 마침 오늘 공문은 확인은 못했지만 역시 4월이라 충분히 가능했다. 공모에 참여할 때 폭발적인 기획력과 접신이라도 한 듯 쏟아져 나오는 문장력에 여러 건을 접수한 터라 당첨이라도 되었나? 기대하며 매일 소식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나는 특기를 살려 이번에도 김칫국을 흡입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답을 찾고야 말았다. 



그건 상금이 아니라 착수금이었다. 내가 벌여 놓은 갖가지의 사업이 있었는데 그중에 집행의 주체로 선정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자, 네가 그 일을 잘할 수 있다고 했지? 이 예산을 가지고 목적에 맞게 잘 운영하고 성과를 내. 그리고 그 결과는 보고서로 자~알 정리해서 제출하는 거야. 오케이?"

하는 명령의 돈이었다. 좋다 말았다. 결국 돈을 잘 써야 하는 또 하나의 일이 생긴 날이 된 것이다. 역시 세상에는 공짜가 없었다. 

만약 순전히 내 돈이었다면 이랬겠지? 온갖 사이트 '장바구니'에 수년, 수개월을 잠자고 있는 아이들과 가지도 못하면서 가상으로 세운 여행 어플의 계획들에 들락거리며 웃음을 지었겠지?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자, 아이들도 다 키우고 특별히 성가시고 힘든 상황도 없지? 오히려 따분할지도 모르는 일상에 무기력해질까 봐 일이라도 많이 하라는 뜻으로 준 거야. 파이팅."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다. 



맞다. 오늘 일진이 나빴지만 이만하길 다행이다. 착한 아이들과 그를 낳고 기른 부모들이 힘을 모아 잘 헤쳐나가자고 한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모르는 돈을 얻는 횡재는 아니었지만 이만하면 좋은 일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몇 시간 늦게 퇴근할 수 있는 정도의 일로 하루가 가는 것이라면 나는 할 수 있다. 

"아이 캔 두 잇!"

수위 아저씨의 눈치를 보면서도 퇴근 후에라도 은밀하고 위대하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가 생긴 날의 일기 끝! 



사진출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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