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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Moon Apr 04. 2024

벚꽃 엔딩, 엔딩

회식을 끝내고 하는 생각들

"한참 먹을 때지! 많이 먹어."

어제 회식에서 나온 말이었다. 내가 한 말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도 비슷했다. 더 어른들이 말씀하셨던

"돌도 씹어먹을 나이일 때 많이 먹어."와 맥락을 같이 하는 마음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아들딸을 볼 때도, 그 전후 또래의 젊은 후배들을 때도 '참 좋을 때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싱그러운 봄날 같은 표정이나 날아갈 가벼운 몸짓 때문이 아니다. 앞날과 자신에 대한 그들의 고뇌를 몰라서도 아니다. 설령 아픈 곳이 있어도 하루이틀 앓고 나면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돌이켜보면 내가 그랬던 것 같아서) 건강한 신체 때문이다. 이게 다 전 같지 않은 몸상태를 실감해 보았기 때문이다.



거스러미! 이 현상을 겪고 나서 그 이름을 알게 되었던 어느 젊은 날이 떠오른다. 나의 먼 옛날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몸짓과 세상 다 가진 듯 즐거운 마음이었던 때였다. 꽃 피는 봄도 아니었고 새싹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 시기도 아니었으리라. 아무 색도 아닌 그저 흰색 눈의 세상이 그토록 아름다운지 느껴보던 날도 아닌 그저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살짝 흐리거나 미세먼지나 황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질척하고 찝찝한 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나에게는 온 세상이 아름다웠던 그 많은 날들 중.

내 손가락 끝 손톱과 살의 좁은 틈에서 무언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때서야 알았다. 세상은 아주 넓고 그 광활한 모든 공간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나날에 방해가 되는 것이 이렇게 작을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몹시 불편했다. 옷깃만 스쳐도 예리하게 찾아드는 통증, 흠칫 놀라 손을 살펴보게 되던 때는 불편한 마음이 생긴 지 이틀 정도는 지나서였던 것 같다. 거스러미를 발견했을 때 처음에는 이토록 가소롭게 작은 것이 나의 아름다운 시간을 멈추게 한 원인이었다니 받아들이기가 싫었다.

그러나 손톱깎이를 바로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한참을 더 보내야 하는 시간 동안 내내 거스러미는 온 신경을 자신에게로 가져가게 하는 능력을 가졌다. 참으로 놀라운 녀석이다. 크기에 비해 존재감이 너무나 확실했다. 그러나 거스러미라는 녀석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아마 알 것이다. 그 하찮은 것을 억지로 떼어 내려고 하면 뜻밖의 커다란 통증이 뒤따른다는 것을.

나도 어찌어찌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손톱깎이를 영접하고 나서야 통증과 헤어질 수 있었다. 젊은, 혹은 어린 나에게는 커다란 경험이었다. 그래서 그날, 그토록 나를 괴롭혔던 작고 작은 존재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 이름도 처음 알게 되었고, 함부로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여 '조갑주위염'이라는 큰 염증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최초에 알게 될 때는 인터넷 정보를 뒤지던 때가 아니었나 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본 조갑주위염의 사진을 보고 다시 한번 거스러미의 위력에 이렇게까지 놀라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참 간사한 존재라는 말을 아파보면 동의하게 되는 것 같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 발가락 하나가 아파 봐야 비로소 걸을 때마다 그가 지닌 지탱의 지분을 느낄 수 있고, 종이날에 베이고 나서야 가장 강하게 단련된 줄 알았던 손가락이야 말로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때야말로 평소 대수롭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몸의 작고 작은 부분들이 소중히 다가오는 때다.

내 나이가 많다고 느끼지 않고 살지만 첫인사처럼, 혹은 처음 누군가를 만날 때 내 나이를 들으면서 누군가로부터 와~많구나,를 대신하는 것 같은 놀라움의 표정을 발견하곤 한다. 그렇구나, 내 나이가 많은 편이구나 느끼는 때다. 젊은 날 거스러미를 가져보기 전에는 몰랐다. 무릎에 물이 차오르기 전에는, 발가락이 휘어 신발 속이 통증으로 괴로워지기 전에는 건강한 몸의 시간이 한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짧게도 사유해보지 않았다.

어제의 회식이 말해준다. 계절 따라 분위기 따라 이런저런 상황에 따라 예전 같은 줄로만 믿고 무턱대고 놀아보고는, 먹어대고는 곧 깨닫는다. '한창 먹을 나이'의 후배들과 같은 시간 동안 즐겼다가는 다음날 부대끼는 속과 컨디션을 경험하게 된다. 술자리에서 안주와 술이 함께 할 때는 더욱 그러했음은 비밀이다. 아무튼 그 회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나이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었는데 어리석게도 몰랐다. 굳이 병원에 성실히 출석체크를 하고서야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잘 따르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나서야 아, 예전 같지 않구나. 그래서 이제 건강관리를 잘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작은 통증에도 뒷일이 두렵지 않고, 내 인생 봄날의 벚꽃이 져버렸음을 슬퍼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몸은 잠시 흔들렸을지라도 마음만은 흔들림 없는 진짜 불혹이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꼼꼼히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50을 앞둔 어느 사람이 큰 비에 허망하게 벚꽃을 보내고 쓰는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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