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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Mar 25. 2024

Prologue.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

[ 지극히도 평범한 엉차장의 퇴직 살이 ]

한창인 나이에 회사를 퇴직하고 실직자로 하루하루를 하는 일 없이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주위 사람들은 내게 회사 생활을 제법 잘한다고, 정년까지 걱정 없는 천생 직장인이라고 말했다. 하얀 와이셔츠에 색색 가지의 넥타이를 매고 잘 다린 양복을 입은 훤칠한 회사원이 되는 것이 어릴 적부터 키워 온 꿈이었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화목한 가정을 꾸미고 부모로서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보며 한 집안의 가장 역할에 충실한 삶은 사는 꿈도 키웠다.


지극히도 평범한 꿈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난 운 좋게도 그 꿈들을 모두 이루며 이십여 년이 넘는 직장 생활을 해왔고 이 시간들은 가족들과 함 행복한 추억들로 하나씩 채워져 왔다. 만약, 신께서 내게 다시 한번 똑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고 하면 난 고마운 마음으로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 기회를 잡을 것이다. 


정년까지 회사 생활을 무탈하기 마무리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동료들의 축하 속에서 마음이 벅차오르는 퇴직을 하고 싶었다. 이후에는 아내와 함께 남은 삶을 소소한 일상으로 채워가는 인생의 후반을 맞이하고 싶었다. 평범해 보이지만 후회 없이 만족스러운 한평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폭풍처럼 찾아온 구조조정은 인생 후반기 내 삶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빼앗아 버렸다. 나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야 했고 준비되지 않은 삶을 살기 시작해야만 했다. 홀로 걷는 길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지극히 평범한 퇴직자의 일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지도 못하는, 그저 우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이름도, 얼굴도 모를 사람의 이야기다.

 

퇴직 후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독서였다. 퇴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하나같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달려가고, 목표를 이뤘다는 아름다운 마무리로 채워진 책들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히 산 사람들이고 좋은 결과를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퇴직한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들과 같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책 속의 그들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실직자의 지극히도 평범한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당신이나 나나 사는 게 별로 차이가 없구나. 사람 사는 게 다 똑같구나”하는 공감을 주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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