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일본 주재원 가보면 어떨까?"
남편이 말을 꺼내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주재원? 좋긴 하지. 당신 경력에도 도움이 될테고. 애들도 국제학교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좋을테고. 근데 내가 휴직을 하려면 타이밍을 잘 봐야 할 것 같은데..승진도 걸려있고"
"그럼, 일단 지원해볼게. 되면 내가 먼저 자리 잡고 있으면 되니까. 어차피 가족이 한 번에 나가면 일하랴 적응하랴 정신 없을테고, 아이들 학교도 미리 준비하고 합격해야 갈 수 있을 거야."
2019년 가을, 남편은 일본 주재원에 지원하게 되었다. 이듬해 봄에 나갈테지만 먼저 간다면 최소 6개월 이상은 떨어져 살아야 할 것이고, 한국에서 두 아이를 혼자 케어해야 한다는 생각에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커져 잠 못이루는 날들이 이어졌다.
좋은 기회이고 또 다른 경험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가도, 이내 먼저 가게될 남편도 또 따라가게 될 아이들도 그 낯선 나라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런지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 주재원 됐어"
남편의 합격 소식에 나는 기쁜 마음으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날렸다. 경쟁이 생각보다 치열했던 만큼, '괜히 지원했나'라며 수시로 물어오는 남편이 얼마나 마음 졸이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합격 소식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렇게 바라던 주재원은 현실이 되었고, 파견까지 남은 두 달여 기간동안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민하며 준비해 나가야 했다. 남편은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당장에 먹고 사는 것부터 혼자 해결해 가야 했기에, 현지 동료들에게 물어가며 주재원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워킹맘으로 이제 혼자 아이 둘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아빠의 빈자리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특히,이제 초등 고학년이 되는 첫째와 곧 유치원에 들어가는 둘째에게 아빠의 빈자리가 무엇일지, 어떻게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 아빠의 존재를 그리워 할 때 그 공백을 잘 메꿀 수 있을지 불안감이 커져갔다.
"안 되겠다. 운전을 배워야겠어!"
운전면허는 있지만, 도무지 운전에 자신이 없어 이 나이가 되도록 운전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상황이 이리되니 장롱에 고히 모셔두었던 면허증에 심폐소생을 해야겠다 결심했다. 아빠가 없다면 당장에 1순위로 아쉬울 것이 운전이었기 때문이다.
장거리 출퇴근에 워킹맘이었기에, 주말 연수를 신청해 몇 주에 걸쳐 10시간 운전을 배웠다. 처음엔 긴장도 많이 했지만 점점 자신감이 붙어갔고, 그렇게 나의 운전면허증은 되살아났다.
후일담이지만, 차도 긁고 벽도 긁고 후진 차량에 받치기도 하며 나는 화려한 운전 경력을 쌓아가게 되었고, 남편의 부재가 길어질 수록 나의 운전 실력은 반비례로 더 늘어갔다.
둘째 유치원 알아보는 것부터 첫째 학원을 돌며 스케줄 셋팅까지 당장 걸려있는 현실적인 것들도 혼자서 척척 해나갔다. 새해가 왔고 그렇게 올 것 같지 않았던 남편의 출국 날이 되었다.
"나 먼저 가 있을테니까, 당신 회사 상황이랑 애들 학교 되는 곳 알아보며 상황을 보자"
그렇게 우리는 잠시 이산가족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채로..
"얘들아. 아빠 돈 벌러 간다"
떠나는 새벽, 남편은 자고 있던 10살 아들과 5살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혼잣말로 이야기하고는 길을 나섰다. 아빠가 간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꿈 속에 남겨둔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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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 "이런 게 생이별이었구나.."
많은 기대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