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하루를 버티는 힘

by 아리아



우리의 삶은 그렇다.


잘 지내다가도 줄다리기로 씨름하듯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기며 불현듯 위태위태 해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누군가의 딸과 아들로, 누군가의 엄마와 아빠로,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주어진 역할을 잘해나가야 하는 게 우리이기에,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일들의 스펙트럼은 꽤나 넓다. 나만의 일이 아닌 내가 책임져야 하는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 있기에, 우리의 인생은 종종 의도치 않게 흘러가곤 한다.


나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일들은 그나마 괜찮다. 나의 노력으로 해결해 가거나, 버텨내며 시간에 맡겨두고 내가 참아내면 되는 일들이라면 하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일들은 또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모님의 일들엔 그럼에도 그간 무심했음에 마음이 아려오기 일쑤이고, 실수 투성이 부모로 살아가며 아이들 일들 앞에서 무능한 부모라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곤 한다.


주어진 의무와 책임 가운데, 우리는 늘 바쁘게 살아간다. 돈도 벌어야 하고,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부모님도 도와드려야 하고, 직장에서의 역할도 잘 해내야 하는 우리이기에 이 모든 일들은 시계의 태엽처럼 맞물려 조화롭게 돌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이 모든 게 어디 하나 삐걱대지 않고 잘 돌아가길 바라지만 그건 희망에 불과하다는 걸 잘 안다.


손끝하나 버티기 힘든 날들이 있다.


내가 어찌해 볼 수도 없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 혹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야 자만했던 일들은 바람과는 반대로 어김없이 일어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예외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세상 무너질 것 같은 허무함에 휩싸이기도 하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며 대상도 실체도 없는 무언가를 원망하게 된다. 힘이 쭉 빠져서 하던 일, 해야 할 일들을 계속할 에너지마저 사라져 버린다. 특히, 아이들 일 앞에서는 속수무책이 될 때가 많다. 말 그대로 배터리 방전이다.


어릴 적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늘 부지런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맞벌이를 하며 삼 남매를 키워야 했기에 일과 육아에서 여느 집과 다르지 않은 일상이었을 테지만, 집에서의 엄마에 대한 기억은 늘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시던 모습이다. 앉아서 쉬신다거나, 누워서 TV를 보신다든지 하는 모습은 전혀 기억에 없다. 그만큼 밖에서도 집에서도 엄마는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구나 그땐 그리 여겼지만,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늘 그렇게 부지런했던 엄마였는데, 대체 어떻게 한결같이 그러실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가끔은 늘어지게 쉬고 싶기도 하고,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을 때도 있었을 테고, 분명 이런저런 속상한 일들에 무너져 내리는 날들도 있었을 테니까. 특히, 한참 사춘기 예민했던 삼 남매들이 돌아가며 엄마를 속 썩였을 때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심경이었을 텐데 말이다.


엄마의 부지런함은 이른 시간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시골 아침의 영향도 있었겠고 원래도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도 있었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기까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엄마에게 힘든 시간이 찾아온 건, 아이들 점심 저녁까지 8개의 도시락을 싸야 했던 시간도, 삼 남매가 사춘기의 피크를 달리며 속 썩였던 시간도, 가게를 늘리며 가게 일에 두 배의 손이 갔던 시절도 아니었다. 그 시간은 우리들이 모두 대학에 가며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찾아왔다.


"엄마가 요즘에 너희들 서울로 보내고 마음이 참 그래서..."


우리 삼 남매가 떠나고 나서, 엄마는 처음으로 멈추었다. 엄마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하셨다. 우리들 때문에 바빴던 시간들에 많은 여유가 찾아왔지만, 그 여유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하셨고, 마음 한편 공허함도 찾아왔다 하셨다. 늘 한결같이 부지런했던 엄마의 일상, 그 일상을 채웠던 우리들, 우리들을 위한 일들은 엄마의 루틴이었고 엄마를 그토록 강하게 만들었던 건 그 루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니, 엄마의 부지런함은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든다. 물론, 그 모든 건 우리를 위해, 가족을 위해서였겠지만 결국 그 모든 일이 엄마 자신을 지켜주지 않았을까 싶다. 바쁘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하루하루 채워가는 일상이 엄마에겐 삶의 의미였고, 그 루틴 속에서 엄마 자신을 지키며 이런저런 변화들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강한 의지 자체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떠나고 나서야, 엄마는 자신을 위한 시간도 필요한 법이라는 걸 알게 되셨다.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드럼도 배우시고, 수영도 다니시며 또 다른 일상의 루틴을 채워가셨고 그 속에서 삶의 재미도 찾으셨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을 다시 찾기 시작하셨다.


엄마가 우리를 키울 때처럼, 나도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워킹맘으로 바쁜 일상을 살다가도 때로는 허무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도 찾아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도 나는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해나가고, 계획한 오늘의 루틴을 지키기 위해 일어나 움직인다.


내가 사라지는 것 같은 삶에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시작한 새벽루틴, 이젠 그 시간이 나의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단 1시간이지만, 독서와 필사, 글쓰기와 강의 듣기로 꽉 찬 1시간을 보내며 시작하는 하루는 내 삶에 또 다른 빛이 되어주고 있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거 같지 않아 무수히 흔들리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일들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날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또 새벽에 일어나 책상에 앉게 되면 '그래. 잘해보자' 스스로 마음을 다지게 되며 저 깊숙이 숨어있던 단단한 나를 만나게 된다.


새벽 5시, 오늘도 어김없이 일어나 책상에 앉는다.


엄마의 삶 혹에서, 그 단순해 보였던 일상들이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내가 해나가는 새벽의 루틴들이, 일상의 일들이 나에게 잘 살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줄 것이기에.!









다음 이야기, "하루하루 하다보니 5년입니다."

기대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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