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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절필동 Sep 05. 2024

감옥에서 생일

오늘이 생일입니다.

당신이 보내준 편지를 읽다가 알았습니다. 

감옥에서 생일을 맞는다는 게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축하를 받지 못해서는 아닙니다.


오늘이 생일임을 알고 아침에 성서 욥기를 펼쳤습니다.

고난 받는 욥이 자신이 태어난 날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고통이 없었을 것이라 탄식하며,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장면을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노트에 욥의 말을 내 말로 옮겨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태초부터 시작된 이 끝없는 어둠이

나의 출생을 삼키고

모든 날이

죽음의 옷을 걸쳐버린다면

내 존재의 무게는

이 땅에 머물지 않았을 것을

빛은 나를 향해 오지 않았을 것을

바람이 부는 저 들판에서

나무 한 그루로

끝내 자라지 않았을 것을

하늘은 나를 덮어

이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리

바람이 불지 않는 곳으로

햇살도 머물지 않는 곳으로

내 몸을 감싸는

이 차가운 별빛이 없다면

내가 이별을 알지 않았다면

내가 처음으로 숨을 쉬던 순간

그 순간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이 차가운 밤을 잊고

그저 흙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바람이 멈추고

햇살이 부서지고

모든 것이 잊힌다 해도

내 고통은

여기 그대로 남아있으리

세상은 고요히 잠들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여전히 깨어 있다네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그림자 속에서


쓰고 나서 두세 번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노트 한 장을 넘겨 새로 썼습니다.     



어둠 속의 빛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를 삼키던 고요 속에서

나를 찾아야 했지

깊은 밤을 지나며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때

그 침묵 속에서

내 안의 소리를 듣는다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쳐 갈 때

나는 그 속에서 작은 속삭임을 듣는다

"너는 여기에 있다, 아직 살아 있다"

어둠이 아무리 깊어도

그 끝에 새벽이 있음을

이제 알아

여긴 동굴이 아니라고

이 어둠의 터널을 지나

빛을 향해 걸어가리라

어둠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상처 위에도 새로운 살이 돋아난다네

눈물의 끝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

그것이 언젠가 자라

나를 새벽으로 이끌어 주리라

나는 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은 더욱 찬란히 빛난다는 것을

내가 살아가는 이 하루

여전히 가치 있어야 함을

나는 ‘절’을 지우고 ‘희’라고 쓴다

희망은 꺼지지 않는 불씨

비화밀교의 믿음

내 안의 작은 불씨를

다시 일으켜

새로 태어날 날(生日)을 맞이하리          




서경(書經)에 보면, 주공(周公)이 군자 소기무일(君子所其無逸)이라고 했다지요. 

군자란 모름지기 ‘무일(無逸), 곧 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편하지 않은 불편에 처해야 한다는 의미를 생각하며 오늘 생일을 보냈습니다.


감옥이 편한 곳이 아닌 것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감옥 생활이 군자의 삶이라고 권하는 이도 없을 겁니다.


흔히 경구(警句)처럼 ‘안일(安逸)함에 처하지 말라’는 가르침과 연관시켜 보면 이해가 좀 더 빠르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일(無逸)에 처할 줄 아는 삶의 태도는 나태함에서 깨어나 있어야 함과 멀지 않다고 봅니다. 

불편함은 흔히 고통과 불행으로 여기고 회피할 대상처럼 보이지만, 편함이 없는 무일(無逸)에 처하라는 말씀은 ‘늘 깨어 있으라’는 엄중한 계명 같습니다. 

어쩌면 가장 불편함의 처소(處所)에 들어와 있으니, 무일(無逸)함을 통한 각성(覺醒)과 성찰(省察)에 소기(所其)하라는 뜻임을 마음에 새깁니다.



편한 것이 문명의 이기입니다. 

며칠을 걸어가야 했던 길을 한두 시간이면 가는 세상입니다. 

빠른 게 다 편하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편한 한두 시간이, 불편한 며칠에 걸려 얻을 만남과 행복을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게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편한 것을 택하면서 잃어버린 불편한 것들을 하나씩 세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감옥은 불편합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남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만납니다. 

종일 나하고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나를 가르치고 나에게서 배웁니다.


감옥은 불편합니다.

필요한 것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있는 것으로 씁니다. 

그래도 써집니다. 

없는 것도 있게 합니다. 

없으면 안 됐던 것들이 없어도 됩니다. 

불편함에 처하면 편함의 필요와 욕구도 없어집니다.


감옥은 불편합니다.

스마트폰이 없습니다. 

당장 통화도, 문자도 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손 편지를 씁니다. 

소통이 느립니다. 

그래서 깊은 마음들을 오래 담아 보낼 수 있습니다.


감옥은 불편합니다.

몸이 갇혀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신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내적 자유의 귀중함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감옥은 불편합니다.

놀 게 없습니다. 

그래서 피곤하지 않습니다. 

바쁠 게 없습니다. 

쫓길 게 없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고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감옥이 나에게 가르쳐 준 가장 큰 것은 ‘침묵’입니다. 

강제된 것은 아닙니다. 

수행의 묵언(默言)은 아니어도 ‘무언(無言), 말 없음’입니다.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냐’ 싶었습니다. 

이제는 ‘말을 하지 않겠다’이고 싶습니다.

말할 사람이 없어서 일 겁니다.

아니 있어도 말하지 않으려는 것은 종일 책을 읽고 있어서 일 겁니다. 

그리고 매일 편지를 입으로 쓰는 일이 아니어서입니다.     


내가 오늘 생일이어서 가장 미안한 게 있습니다.

가족들이 오늘 내 생일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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