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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첫 만남

설렘, 떨림, 긴장

by 메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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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고등학교 위탁교육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추억으로 남는 기억이지만, 당시 처음으로 맡은 강의가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게다가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학교를 나가지 않고 직업학교에서 1년은 보낸다는 것에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죠.


하지만, 이내 고등학교 위탁교육 시스템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었고 단어만 변경되었을 뿐 내가 고등학교 시절 있었던 직업반과 같은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의 학창 시절 직업반이라고 하면 공부가 싫어서 도피처로 모여있던 곳이지 반이름처럼 직업에 뜻이 있어서 선택한 학생들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때 인식 때문이었는지 고등학교 위탁교육을 맡았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서게 되었습니다. 그냥 공부가 싫어서 오는 학생들이라면 어떻게든 공부를 시켜보겠지만 소위 말하는 학교 일진이나 괴롭히는 학생들이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개학날이 다가왔습니다.



설렘, 떨림, 긴장

개학날 아침이 밝아오고 무거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출근 준비를 하면서 솔직히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생각을 다르게 먹기로 했습니다.

진심은 언제나 배신하지 않는다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봤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수업에 있어서는 흠잡을 때 없는 좋은 선생님이셨지만 담임선생님으로는 아쉬운 점이 좀 많았던 기억입니다.

선생님도 사람인지라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학생들을 편애하시는 경향이 꽤 많으셨죠. 다가가고 싶어도 선생님께서 내 존재는 아실까? 내 이름은 아실까? 복합적인 생각이 많이 들어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졸업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런 기억 때문에라도 아이들 모두에게 차별 없이 똑같은 잣대로 진심을 다해 다가간다면 조금의 보람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그렇게 마음을 다시 잡고 출근을 하였고 막상 학교에서는 걱정할 틈도 없이 개학식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그리고 9시가 다가오면서 아이들이 하나, 둘 등교를 시작했고 아이들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면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설렘, 떨림, 긴장


밝은 표정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걱정했던 마음은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고, 아이들 표정에서도 설렘, 떨림, 긴장이라는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첫 만남

제가 근무한 직업학교는 디자인, 기계설계, 미용과 같이 3개 과정을 고등학교 위탁교육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각 과정에 담임 선생님들이 배정되었고, 9시 1교시 시작 5분 전에 조회를 위해 각자 교실로 이동하였습니다. 교무실에서 교실까지는 불과 30m도 안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그날따라 30km 같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교실 앞에 도착했고 문을 열어 아이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아직도 아이들의 표정이 기억나네요. 무뚝뚝한 표정과 살짝 긴장해 상기된 표정, 나이 많은 남자 선생님에 대한 실망한 표정, 아이들 각각의 표정이 모두 보였습니다.


첫 만남은 언제나 그렇지만 어떤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존댓말로 해야 하나? 반말로 해도 되나? 찰나의 순간이지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났습니다.

반갑다! 얘들아!


첫인사와 함께 아이들 표정을 보니 아이들은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다시 침묵을 이어갔습니다. 전 이 난관을 빨리 헤쳐나가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기에 일단은 아이들 출석을 불러 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마주치고, 이름을 부르고 눈을 마주치고.

그렇게 28명의 아이들과 모두 인사를 나눈 뒤 제 소개를 시작했습니다.


실무에서 10년 넘게 설계를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와 함께 어떻게 교육으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는지까지 아이들에게 정신없이 말했던 것 같습니다. 제 소개를 모두 마치고 그때 비로소 아이들 눈을 봤을 때는 첫 만남 때와는 다른 표정이었어요. 뭐랄까 신기하다는 표정도 있었고, 기대에 찬 표정,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 등 여러 가지 표정과 눈 빛이 보였습니다.


아이들에게 질문도 받아보고 학교에서 듣지 못하는 실제 사회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저는 제 자신에게 다짐과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희들 선택에 후회가 없도록 도와줄게!


물론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직업교육을 배우러 왔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한다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과 걱정, 기대와 설렘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식과 기술은 가르쳐주면 되지만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인성은 배우기 쉽지 않죠. 그래서 저는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아이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에서 갈림길이 나온다면 그 갈림길 가운데에서 힘든 길과 지름길을 안내해 주려 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선생님이지 아이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항상 선택권은 아이들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첫 만남이 끝나고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죠. 처음 봤던 아이들의 눈빛에서 느껴졌던 호기심 가득한 표정, 기대가 가득 찬 표정으로 순탄하게 흘러갈 것 같았던 저의 고등학교 위탁 1년은 바로 다음 날부터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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