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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실망, 안타까움 그리고... 용서

평범하길 바랐던 하루

by 메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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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길 바랐던 하루

4월의 어느 봄날 여느 때처럼 평범한 하루가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길에 따뜻한 햇살과 함께 기분도 좋은 어찌 보면 완벽하게 시작되는 하루였습니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수업준비를 마치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1교시가 시작되었고 출석을 부르는데 2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금 늦나 보다'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죠. 1교시가 지나고 2교시가 지나도 아무런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는데 아이들 역시 아는 친구들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나오지 않은 아이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고, 한 아이는 핸드폰마저 꺼져있었습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서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지만 역시 아침에 등교하는 것까지 보시고는 출근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두 아이가 평소에 친한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두 아이가 같이 있을 것 같았고 저는 계속 전화기가 켜져 있는 아이에게 전화와 문자를 계속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날 때까지 연락이 없었고,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죠.


저녁 6시가 가까이 오던 무렵 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여기 ㅇㅇ지구대인데요.


저는 지구대라는 한 마디를 듣자마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네~ 무슨 일이시죠?"라는 말과 함께 속으로는 '제발... 제발..' 아이들 일이 아니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걱정은 현실이 되었고, 경찰분께서는 저에게 부모님과 통화는 안되고 최근 통화목록에 제가 있어서 연락을 주셨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일단 시간 되시면 오셔야 할 것 같다는 경찰분의 말씀에 주저 없이 차를 끌고 갔습니다.



실망...

지구대 도착한 저는 소파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두 녀석들을 보았고, 이내 경찰분들에게 저 아이들 담임선생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경찰분께서는 조금 전에 부모님과도 통화가 돼서 오고 계시다고 하니 부모님이 오시면 같이 이야기하자고 하셨습니다. 녀석들은 계속 고개를 못 들고 있었고, 잠깐 숨을 고를 때쯤 녀석들 부모님들이 오셨습니다.


경찰분께서는 저와 부모님들에게 녀석들이 어떻게 끌려오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두 분 다 어찌 된 일인지 '에휴~'라는 한숨과 함께 걱정이나 화가 난 표정이 아닌 '그럼 그렇지~'라고 하는 표정이셨습니다.


경찰분이 말씀해 주신 내용은 녀석들 중 한 명이 자기 형 주민등록증을 몰래 가지고 렌터카를 빌리려고 했다는 겁니다. 다행히 렌터카 업체 사장님께서 아무리 봐도 수상해서 차를 끌고 가기 전 경찰에 신고했고 이렇게 잡혀와 있다는 거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고등학교 3학년이면 이제는 어떤 행동이 범죄라는 것을 아는 나이일 텐데 정말 알고 저지른 건지 이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중 한 아버지께서는 "저도 이제 지쳤으니까 그냥 콩밥 먹이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자식이 듣는데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 좀 아니다 싶어 경찰분에게 제가 다시 한번 여쭤봤죠.

저 녀석들 어떻게 되는 건가요?


경찰분께서는 차에 시동을 걸면 운전 상태로 보기 때문에 죄가 무겁지만 도착했을 때는 차에 시동을 걸기 전이라서 경찰서까지는 안 갈 것 같다고 하셨죠. 아무리 가족의 주민등록증이라도 도용해서 차를 빌리는 행위는 범법행위라고 하셨고, 이에 대한 처벌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방법이 없는지 다시 여쭤봤고 경찰분께서는 주민등록증 당사자인 형과 부모님 의지가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가서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가르친 잘못 가르쳤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라고 말씀드렸고, 부모님께서는 선생님께서 무슨 잘못이 있으시냐면서 저를 붙잡고 밖으로 잠깐 나가셨습니다. 이내 경찰분도 나오셨고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겁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죠.

경찰분도 이미 아버지와 통화하시면서 이야기가 다 된 사항이라고 하셨습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부모가 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훈방조치 하면 뉘우치는 것 없이 다음에 또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러니 선생님께서도 아이들을 꾸짖어 주시고 혼 좀 내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 경찰서에 부모님들이 오시고 보여주셨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제야 이해가 갔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저는 이내 녀석들에게 갔습니다.



안타까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녀석들은 제가 다가가자 "선생님 죄송합니다."라고 이야기했고, 이내 다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는 혼내기 전 아이들에게 일단 이렇게까지 한 이유를 물어봤죠.

왜 그랬어?


이유를 묻자 아이들은 저에게 묵비권을 행사하듯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다그치듯 물어봤자 아이들 입은 더 무거워질 것이 뻔해서 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5분이 지나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어서 저는 무작정 혼을 내기보다는 이유를 듣고 그 이유에 맞는 훈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에게 한 마디 했죠.

내일이든, 모레든, 한 달이 지나든 기다릴 테니 선생님한테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얘기해.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들을 보고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뭔지 모르겠지만 실망감으로 가득했던 제 마음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점점 차 오르더군요.


아이들 부모님들께서 이내 다가오시더니 아이들을 혼내시고 반성문으로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으니 반성문 쓰고 가자고 하셨습니다.

내일 보자!


저는 아이들에게 이 말 한마디만 남기고 부모님들과 경찰관분들께 인사를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저는 연신 한숨만 내쉬었고 마음 한 구석에 답답함이 가득했습니다.



용서

다사다난했던 전날이 지나고 다음날이 밝아왔습니다. 출근길에 저는 오늘 녀석들이 안 나올까 봐 미리 녀석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다행히도 전화를 받았고 학교에 오겠다는 답을 들은 뒤 출근을 했죠.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두 녀석들은 계속 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녀석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죠.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녀석들 둘이서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점심시간에 잠깐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계속 이야기하지 않고 이 상태로 지낼까 봐 솔직히 불안하기도 했거든요.


점심시간에 녀석들이 왔고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밖에서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밖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녀석들은 먼저 죄송하다고 말하고 선생님께서 오실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사고를 쳤을 때 선생님께 연락해도 오신 분들이 없어서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보다 더 빨리 오셔서 솔직히 너무 놀랬다고 했습니다.


녀석들은 이유를 저에게 얘기했고, 면허를 딴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운전해 보고 싶어 그랬다고 하더군요.

아이고... 이 철없는 것들...


저는 아이들에게 다시는 사고 치지 말라고 당부했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그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 앞으로 살면서도 잘 지키면서 살라고 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녀석들을 어떻게 혼을 내야 말을 잘 들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먼저 다가와 이야기를 하니 혼을 내기보다는 몸만 컸지 아직 애기들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녀석들이 오래 끌지 않고 다음날 바로 이야기해 줘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녀석들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녀석들도 이번 일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다시는 살면서 사고 치는 일 없이 바르게 살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아이들에게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할 수 있는 건 믿는 방법 밖에 없으니 믿음을 깨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틀 동안의 엄청난 일들이 마무리되었고 한동안 조용한 나날을 보내며 5월을 맞이했고 3월에 입학한 아이들의 첫 번째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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