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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우린 서로 알아가는 중

작심 2주

by 메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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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에 선 아이들


3월은 학생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이나 걱정보다는 설레임이 앞서는 달입니다. 더군다나 이 곳은 지금까지 아이들이 생활했던 학교가 아닌 새로운 환경과 여러 학교에서 모인 새로운 친구들이 모이기에 더 설레는 마음이 많았을 겁니다.


저는 처음 다짐했던 것처럼 아이들을 편향적인 시선이 아닌 어느 누구도 차별없이 각자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첫 날 오리엔테이션에서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의 규칙과 지금까지 배운 국, 영, 수 과목이 아닌 본인이 배우고 싶어서 선택한 진로에 대한 과목인 만큼 열심히 배우자고 독려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나를 바라봐 주었지만 역시나 아웃사이더 같이 맨 뒤에서 엎드려 자거나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학생도 있었죠.


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아직은 낯설고 대부분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에 대해 필요성을 못느끼거나 흥미가 없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을테니까요.


일단은 이런 아이들에게 처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생각을 해 본 결과 단어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관심


그래서 저는 28명의 아이들의 이름을 최대한 빠르게 외우기 위해 매 시간 출석을 부르는 것은 물론 이름을 부를 때마다 대답을 할 때까지 또 부르고, 또 부르고를 반복했습니다.


자고있는 아이, 이어폰을 끼고 있는 아이, 이름이 불려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대답하지 않고 째려보는 아이...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걱정은 됐습니다. 시작한지 하루가 지났는데 이 정도인데 앞으로 12월까지 어떻게 끌고 가야할지 걱정과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직 적응이 안되서 그런거겠지? 아직은 낯설어서 그런거겠지? 이런 말들로 위안을 삼으며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로 했습니다.


당연히 28명의 아이들 모두 걱정되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본인이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운다는 기대감으로 공책도 준비하고 형형색색의 형광펜, 볼펜을 챙겨 수업시간에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을 보며 대견하기도 했습니다.


처음 일주일 저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과목이 자칫 어려워 흥미를 잃을까봐 최대한 천천히, 단 한명도 뒤쳐지는 아이가 없도록 끝까지 기다려 주며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2주가 흘러가고 3주차가 될 무렵 우려했던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군요.



작심 2주

3주차가 되면서 서로 얼굴도 익숙해지고 옆 친구들과도 조금씩 말을 섞으며 수업시간 집중도가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옆 친구와 떠드는 아이, 몰래 인터넷 하는 아이, 자는 아이...


어떻게 2주만에 이렇게 되는지 조금은 황당하기도 했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딱딱한 교실보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많이 나는 교실이 더 보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아이들이 눈치챘는지 정도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하더군요. 수업시간 조용히 하자는 말은 단 1초도 안 지나서 다시 왁자지껄..

현타


정말이지 현타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단체로 이야기 하는 것보다는 1:1로 상담을 진행해 보자라는 마음에 다음날부터 바로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현재 상황과 가지고 있는 생각은 어떤지, 수업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이런 질문들은 너무 형식적인 것이라서 오히려 아이들의 속마음을 알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죠. 이렇게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과 본격적인 상담을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쉽게 열지 않는 마음

출석부에 제일 첫 번호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준비한 질문으로 시작했죠.

본인 스스로를 한마디로 표현해줄래?


이 질문을 나가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 희망은 곧 당황으로 변했습니다.

그 아이는 단 1초도 생각하지 않고

글쎄요, 그게 중요한가요?


이렇게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당연히 곰곰히 생각하다가 이야기 해 줄 것 같았는데 오히려 예상치 못한 역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질문에 저는 순간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보자는 마음으로

물론 중요하지 않을 수 있고,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어.


한 번쯤은 내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현재 무엇이필요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대충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걸 말해주면 선생님도 너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는 제 진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이후로 입을 꾹 닫더군요.


만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사람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되는 일이죠. 그것을 생각 못했던 것도 아니지만 선생님과 제자라는 특수성에 조금의 기대를 해 본것은 사실입니다.


상담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다소 어려운 사람과 단 둘이 대화한다는 것은 제가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도 쉽게 말을 꺼내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그 아이에게는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달라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를 남기고 첫 상담을 마쳤습니다.

아, 어렵네...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잘 가르치기만 해도 50%는 먹고 들어간다지만, 저는 제 경험도 있었고, 아직까지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어서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후 아이들과 상담을 이어갔지만 마음을 열고 이야기 하는 아이들은 없었습니다.


심리와 관련해서 공부를 해야하나, 무작정 기다려야 하나, 상담의 기술을 배워야하나, 여러가지 생각이 있었지만 아직 초반이고 하니 일단은 기다려보기로 결론을 내리고 종례시간에 아이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든, 두 달이 지나든 선생님은 기다릴께. 대신 너무 오래 기다리게는 하지 말아줘.


그리고 제 속마음부터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우리는 서로 알아가는 중이고, 그래서 너희들의 속마음을 알고 싶은 것이고, 1년이라는 시간동안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한다면 어떤 점들이 도움이 될지, 제가 경험하고 느꼈던 진솔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종례시간에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듣기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진심이 조금은 통했는지 아이들 모두 제 이야기를 듣고 있었죠.

솔직히 겁도 났습니다.


학교에서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이 곳에서 겪으니 아이들로 하여금 거리감이 생길 수도 있고, 부담스러워서 그만 둔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괜히 말했나? 싶기도 했습니다.



서로 서툰 사이

수업시간에는 아이들이 다행이도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같이 정한 규칙에 의해 생활하고 수업시간에도 농담을 섞어가며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죠.


두 달째 되는 어느 날 아이들과 어느 정도 친해지고 이제는 소소하게 장난도 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상담을 시작했죠. 대신 이번에는 상담 전에 미리 이야기 했습니다.

너희들도 내가 처음이고 나도 너희들이 처음인 만큼 서로 서툰 사이니까 우리 이번 상담은 좀 서툴게 해볼까?


아이들은 이내 어떻게 서툴게 하실건데요? 라고 질문했고, 저는 상담실이 아닌 밖에서 같이 산책하면서 이야기 해보자고 했죠.


저희 학교는 주변에 산책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있었고, 때마침 벚꽃도 활짝 펴서 돌아다니기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점심시간에 각자 밥을 먹고 음료수 한 잔씩 먹으면서 학교 생활하는 이야기부터 친구들 이야기 같은 사소한 이야기를 했고 다행이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속상했던 일, 고민거리를 저에게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최대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진지한 답변보다는 다소 가벼울수도 있는 이야기로 답을 해주었죠.

아이는 이내 저에게

쌤! 벚꽃 밑에서 애들이랑 사진찍어요!


라고 이야기 했고 좋은 생각 같아서 아이들과 수업을 마친 후 단체로 사진 한장 찍었습니다.


아이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 어린 아이처럼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아이들에게 좀 더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첫 상담은 다행이도 잘 마무리 되었고, 그 이후에 상담 시간은 상담실이 아닌 밖에서 아이와 산책하며 이야기 했습니다. 때로는 가벼운 이야기,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 때로는 이성문제와 같이 시시콜콜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상담이라는 틀에 박힌 어떤 절차보다는 진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다가갈 때는 완벽한 선생님의 모습도 좋지만, 서로 서툰 사이일 때 더 깊이있는 이야기도 하고 유대감이 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서툴지만 완벽했던 나의 첫 상담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온한 나날이 계속될 줄 알았던 저에게 다시 큰 시련을 주게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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