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꿈, 대안을 찾다
나는 취업을 위해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기계설계를 가르치고 있는 직업훈련교사입니다. 딱딱하고 생소한 분야일 수 있지만 내가 남기고 싶은 글은 설계 기술이 아닌 직업훈련교사로 처음 시작했을 때 겪은 에피소드를 풀어볼까 합니다.
어긋난 꿈, 대안을 찾다
나는 어릴 때부터 2가지 꿈을 꾸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건축설계를 배워 내 손으로 집을 설계하고 지어주는 설계자와 어떤 과목이든 상관없으니 누군가에게 지식을 전달해 주는 선생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시작부터 잘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죠.
꿈과 목표를 혼동하지 마라
학창 시절 나는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꿈이 목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마주하니 그 말이 이해가 되더군요.
내 손으로 설계한 집을 내 손으로 지어서 가정을 꾸리고 싶은 꿈은 정말 꿈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막연하게 "노력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현실과 마주했을 때는 부족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도 다른 길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길을 찾아본 결과 건축설계가 아닌 기계설계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건축설계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재수를 해서라도 도전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했지만, 그 당시 1년이라는 시간을 다시 투자해서 공부할 자신이 없던 터라 기계설계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개강과 동시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기계설계라는 다소 생소하지만 흥미가 있던 분야였기에 학기 초부터 스터디 그룹을 주도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역시 뜻대로 되지 않고 멤버들과 함께 공부라는 핑계로 술과 당구장을 전전하며 노는 시간에 대부분을 투자하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선배와 술자리에서 취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정신이 번쩍 드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너는 이력서 쓸 자신 있냐?
이 말을 듣고 바로 "당연하죠"라는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을 때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취업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학창 시절 이루지 못한 꿈 대신 찾은 대안이라면 더 열심히 노력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얼마 남지 않은 대학생활은 취업을 위해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큰 기업은 아니지만 중소기업의 취업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기계설계라는 직업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설계라는 직업
내가 취업한 곳은 플라스틱을 녹여 틀에 찍어 제품을 만드는 사출금형 업체였는데, 그곳에서 금형 설계를 맡고 있었습니다.
어떤 직군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처음 입사하면 자리 배정받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일이 대부분이죠.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나고 나에게 첫 작업이 주어졌고 나름대로 배운 지식으로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하지만, 첫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고 어떻게든 해결해 보고자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봤지만 일에 진척이 전혀 나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해도 해도 모르는 부분에서는 이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어려운 걸 주는 걸까?
하지만 결론은 내가 부족한 탓이었습니다. 취업에 급급해 자격증만 공부하고 정작 기계설계라는 개념도 모른 채 회사에 취업하니 개념도 없고 기본도 없는 도면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수로 계시던 과장님은 저에게 오셔서 책 한 권을 주시더니 앞으로 1주일의 시간을 줄 테니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공부해 보라고 하셨죠.
지금 생각해 보면 과장님이 저를 봤을 때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과장님이 주신 책은 설계뿐만 아니라 자격증 공부를 할 때도 필요한 KS규격집이었죠.
1주일 동안 KS규격집을 공부하고 다시 제가 그렸던 도면을 보니 엉망진창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내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과장님께서는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시기보다는 스스로 알아낼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과장님의 이 방식은 지금도 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방법이죠. 스스로 깨우치는 것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 것도 없으니까요.
어느 날 술자리에서 과장님이 저에게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 정확 그리고 기본이다.
설계가 잘못되면 금전적인 피해도 피해이지만 자칫 사람의 생명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놓으면 안 되는 직업입니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신속, 정확, 기본 이 세 가지만 지킨다면 아마도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두 번째 꿈을 찾아서
이렇게 열심히 설계를 배우고 어느덧 10년이 넘었을 무렵 갑자기 학창 시절 제 꿈이 생각났습니다. 비록 건축설계는 못했지만 기계설계라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니 50%는 이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잊고 있던 두 번째 꿈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가르치는 일이었죠.
그 후로 한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12년째가 되던 해 제 꿈을 이루기 위해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가르칠 수 있는 직업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았지만 제일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나이였습니다.
30대 후반을 향해 가고 있었고, 강의 경력은 전무한 상태에서 어떤 곳도 제가 지원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대로 꿈을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좌절도 있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학원, 직업학교 등 가르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력서를 보내봤습니다.
1주일이 지나고 2주가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어 그냥 설계를 계속해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하는 생각에 포기하려는 순간 면접을 보자는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그곳은 직업학교였고 제 경력을 보고 주저 없이 면접제의를 하셨다고 하더군요. 직업학교 특성상 실무 경력이 중요하고 그다음이 가르치는 스킬이었기 때문에 일단 면접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면접은 무난하게 합격하여 직업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렇게 직업훈련교사라는 두 번째 꿈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