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필요한 근거를 찾아야 한다
IT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처음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운 좋게도 첫 회사에서 해보고 싶었던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높은 성취감을 느꼈다.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주도적으로 일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첫 회사는 나에게 회사 그 이상의 의미다.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생 때에 많은 경험을 했더라도 실무는 다르다. 처음 내게 주어진 일은 '시장 조사'였다. 거창하게 말해 시장 조사지, 당시 회사의 메인 서비스와 동일한 타깃을 갖고 있는 경쟁 서비스를 찾고,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을지 정리하는 단순 과제 형태의 업무였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시장 조사 정도야 이미 되어있을 것이 당연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조사할 내용은 이미 회사에서는 파악하고 있을 내용이었다. 그렇게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어떤 내용을 조사해서 정리해야 좋을까? 조금 고민을 해보니, 회사에서 이런 일을 맡긴 이유를 먼저 생각해봐야 했다. 생각해보니, 이 일이 나에게 주어진 이유는 아래와 같았다.
첫째. 새로 입사한 마케터의 역량 파악하기
둘째. 빠르게 시장 상황을 파악하고 업무에 투입될 수 있도록 돕기
일이 필요한 이유를 정리해보니 어떤 내용을 어떻게 조사해야할지 명확해졌다. 더불어 조사 내용도 내용이지만, 조사한 내용을 문서화하고 보고하는 과정에서 업무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약 일주일의 시간을 갖고 다양한 지표로 자사 서비스와 경쟁 서비스를 비교하는 문서를 만들었고, 이 내용을 마케팅팀, PM 등 앞으로 함께 업무를 해나갈 동료들 앞에서 발표했다.
당시 만들었던 자료를 다시 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내용도 겉핥기에 그친 내용이 많고, 시간을 갖고 공들인 것에 비해 흐름이 매끄럽지도 않다. 그러나 각 경쟁 서비스와 자사 서비스를 비교하면서, 서비스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점, 현재 상황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을 근거와 함께 제시한 점은 여전히 눈에 띄는 부분이다. 최근에도 일을 하다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면, 이 문서를 다시 열어보곤 한다.
이 업무를 시작으로, 나는 제안했던 업무를 하나씩 해나갈 기회를 얻었다. 일이 필요한 적절한 근거를 찾고, 내가 해나갈 수 있는 일을 정의하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주도적으로 하는 일은 곧 잘하고 싶은 일이 된다. 왜 이 일이 비즈니스에 필요한지 정의하고, 해야 하는 일을 과감히 제안할 것. 그리고 그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과정. 나는 여전히 잘하고 싶은 일이 많다.
신혜지(@ssineji) | 마케터
좋아하는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하는 일을 합니다. 알고싶은 것이 생기면 책을 읽고, 배운 것을 글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