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겸손은 독이 된다
'혼자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처음 팀원으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이 정도의 신뢰도 없을 정도로 내가 무능했던가? 늘 맡은 바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충분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짧은 한 마디 속 얕게 깔려있는 내 능력에 대한 무시로 느껴져 무척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오해는 곧 풀렸다. 말하지 않고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기에,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임을 전달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을 진행한 경험이 있으며, 혹시 진행하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공유하겠노라고. 그러니까 이 일을 내가 맡아서 하겠다고. 그런데 돌아오는 말에 나는 다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말해주지 않으셔서 저는 몰랐어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깨달았다. 팀원의 '혼자 하실 수 있겠냐'는 말은 무시가 아니라 순수한 질문이었고,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얼마만큼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함께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기회를 얻고 나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말을 하는 것'은 그런 기회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이다.
묵묵히 일을 하다 보면 모두가 기꺼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다른 사람은 내가 무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 내 일은 언제까지나 나에게만 중요하다. 그러니까 내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나라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적어도, 팀원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싶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시절에는 '아니다'라고 손사래 치기 바빴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할 때와 그렇다고 해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안다. 지나친 교만과 습관적으로 늘어놓는 자기 자랑도 그 나름대로 문제지만, 지나친 겸손또한 일하는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그리고 나의 일도 같이 중요하지 않게 만든다.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할 차례다.
'그 정도는 제가 마무리해서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전 회사에서 비슷한 일을 진행해 본 경험이 있어요.'
'제가 할 줄 압니다. 제가 해볼게요.'
나의 말에서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 자신감 있는 태도에 동료들의 신뢰가 쌓인다. 말 한마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아지도록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적절한 단어를 골라,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신혜지(@ssineji) | 마케터
좋아하는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하는 일을 합니다. 알고 싶은 것이 생기면 책을 읽고, 배운 것을 글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