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독 72일차]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 일상의 일부

김주환 <내면소통>, 메이슨 커리 <예술하는 습관>

by 윤서린

찔끔찔끔 읽고 있는 읽어야 할 책, 김주환 교수의 <내면소통>을 다시 꺼냈다.


오늘은 [자기조절력: 나 자신과의 소통능력] 부분을 읽는다.


우리가 흔히 스스로를 절제, 통제하는 것이라고 막연히 알고 있는 "자기조절력"의 뜻을 알아본다.


김주환 교수는 "자기조절력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집념과 끈기를 발휘하는 능력이다. 또 자기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는 능력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제대로 존중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곧 자기조절력이다. 하위 요소로는 감정조절력, 긍정성, 자기 절제, 충동통제력, 성실성, 도덕성, 정직성, 끈기, 집념 등이 포함된다. (...) '나'의 현재 상태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나'의 상태를 향해 몰고 가는 능력이 바로 자기조절력이다." (79~8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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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 교수는 "나"를 분리해서 말한다.

* 주관적 자아(I) : 경험하는 자아(지금-여기에 존재하면서 현재 내가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아)

* 객관적 자아(me)(self) : 기억하는 자아 (과거의 경험을 기억의 형태로 저장해 둠으로써 생겨나는 자아 개념)


"경험하는 자아가 '나는 지금 여기서 하나의 경험을 하고 있다'라고 심리적으로 느끼는 '순간'의 지속 시간은 대략 3초 내외다. 따라서 우리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2만 번의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가 만일 80년 남짓 산다면 평생 대략 6억 번가량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은 대부분 즉시 사라져 버린다. 우리의 기억에 아예 남지 않는 것이다. 이중 극히 일부만 특정한 이야기로 편집되어 저장된다. 이러한 이야기가 쌓여 '기억하는 자아'를 만들어낸다. (...) 즉 '나'는 수많은 경험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선택해 자의적으로 통합하거나 각색하고 편집해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 한 다음 하나의 이야기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에 대한 기억의 집합체가 곧 '기억하는 자아'이자 '객관적 자아(self)다. " (80면)


내 주변 사람들은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조지 허버트 미드에 따르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커뮤니케이션했던 수많은 사람과의 경험을 추상화하여 적분한 것'이 곧 '나 자신'이다. 즉 내(I)가 생각하는 나 자신(me)이란 타자와 상호작용한 결과로써 일반화된 타자다. (...)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는 그동안 내가 소통하고 상호작용했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산물이다." (81면)


내 주변 사람들이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김주환 교수의 글을 읽으며 몇몇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본다. 워낙 관계가 좁은 나라서 손가락에 뽑히는 몇몇의 사람들.


이제 나는 나와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걸어간다.

그들의 앞선 발걸음을 열심히 따라 걷기도 나란히 걸으며 서로를 응원하기도 한다.

그 사람들을 떠올리다 문득 미소가 지어진다.


메이슨 커리 <예술하는 습관>-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 하루의 기록"을 읽는다.


책을 휘리릭 넘기다 눈길이 끌리는 곳에 멈춘다.

오늘은 전선으로 만든 조각품으로 명성을 얻은 일본계 미국인 예술가 "루스 아사와"에 대한 내용이다.


예술이란 일상의 일부


그녀는 제2차 세대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1940년대에는 노스캘로라이나에서 블랙마운틴 칼리지를 다니며 나선 모양 철사 조각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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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아사와"의 작품활동. (출처 :네이버)

그녀는 9년 사이 여섯 자녀를 출산했는데 그녀 자체도 일곱 아이중 넷째로 대가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예술이란 일상생활의 일부여야 한다"(138면)고 느끼며 자신의 아이들을 작품 활동의 방해물로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다른 집안일을 하다가 틈이 날 때마다 아이들을 곁에 둔 채 철사 조각을 했다.


"제 재료는 간단했어요. 자유 시간이 날 때마다 자리에 앉아서 작업을 약간씩 했죠. 조각은 농사와 같아요. 계속 꾸준히 하면 상당히 많이 할 수 있죠" (139면)


여섯 아이를 돌보며 예술가로서 작업을 해나간다는 것이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몰입이 깨지는 순간도 많았을 것이고.

하지만 그녀는 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일상이 예술이고, 예술이 일상이라는 것을...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녀 말처럼 잠깐의 틈만 있어도 그 시간을 이용해해 보는 게 어떨까 싶다.


"약간씩"이라도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내 나안에 있는 자갈밭의 자갈들을 시간 날 때마다 몇 개씩 옮겨 놓는 거 아닐까?

그러다 보면 씨앗을 뿌릴 터가 생겨나고 뒤돌아보니 골라낸 자갈들이 어느덧 하나의 탑, 혹은 내 터를 지켜줄 돌담이 되지 않을까?


나는 챙겨야 할 아이가 넷, 신경 써야 할 시부모님 둘...

매일이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변수의 연속이다.

하지만 나는 그 틈을 이용해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시부모님 병원 모시고 가서 진료대기 시간 동안 "10분 사유하고 글쓰기", 얇은 책 두 세장 읽기, 좋아하는 음악 듣기 등...


꾸준히 하는 새벽독서와 글쓰기, 오늘의 시작이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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