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머리나 벤줄렌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
톨스토이가 세계적 문학작품들과 사상서에서 발췌한 문장을 담은 책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읽는다.
출처가 없는 것은 톨스토이 본인의 문장이거나 작자미상의 것임을 책머리에 밝혀두었다.
오늘 새벽독서에서 읽고 생각해 볼 내용은 272~274페이지에 있는 문장이다.
신의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사람들의 평판에 따라 울고 웃지 않는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것은, 정부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특혜를 베풀어 부의 불평등을 낳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선적 행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세상 구조 속에서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알량하게 도와주고 큰 은혜라도 베푼 것처럼 으스대지만, 과연 그것이 정말로 '자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_칸트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턱없이 싼값에 사는 자도 도둑이라고 부른다
"(...) 나는 남의 지갑을 털어 돈을 훔치는 자와 마찬가지로,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턱없이 싼값에 사는 자도 도둑이라고 부른다. 벽을 부수고 남의 집에서 물건을 훔쳐가는 자만이 약탈자가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이웃에게서 뭔가를 가로채는 자 또한 약탈자이다. _이오안 줄라토우스트
어쨌거나 깨지는 것은 물병이다
"돌이 물병 위에 떨어지면 물병이 깨진다. 물병이 돌 위에 떨어져도 물병이 깨진다. 어쨌거나 깨지는 것은 물병이다. _탈무드
대낮같이 떳떳하게 살아라
"대낮같이 떳떳하게 살아라" _ 오귀스트 콩트
아무것도 감출 필요가 없는 삶,
특별히 자랑하지 않는 삶을 살아라
아무것도 감출 필요가 없는 삶, 그와 동시에 자기가 한 일을 사람들 앞에 특별히 자랑하지 않는 삶을 살아라. (275면)
우리는 떳떳하게 진실되게 살라는 말은 알지만 사실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아이들에게 도덕적인 규범이나 태도를 알려주면서 그 앞에서 나는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인생을 그렇게 살았노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간관계에서도 누군가를 진실되게 이해하고 나를 진실되게 보여주는 일도 마찬가지다.
진실은 어쩌면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있어서 우리 삶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때로는 진실이 묻히고 진실이 승리하지 못할 때도 있다.
나는 과연 내 삶에서 그늘진 부분을 숨기지 않고 태양처럼, 대낮처럼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간단히 책표지 안쪽의 저자의 소개를 요약해 본다.
머리나 벤줄렌 (Marina Van Zuylen)
프랑스 태생, 하버드 대학교 등을 거쳐 현재 뉴욕 바드대학에서 비교 문학 교수로 재직.
소외된 성인을 위한 무료 대학 과정 "인문학 클레멘테 과정"의 전국 학술 책임자.
이 활동으로 "국가 인문학 훈장"을 받았다.
인문학 수업을 준비하던 중 자신을 찾아온 학생이 본인의 ADHD(주의력결핍장애)로 인해 약을 복용하는데 이 때문에 과도한 집중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시를 읽거나 예술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되었다는 고민을 듣게 된다.
머리나 벤줄렌은 이 고민에 대해 생각하다 "유익한 산만함"이라는 개념을 만든다.
그는 천천히 사유하는 태도를 예찬하는 <창조적 영감에 대하여>를 집필,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감각하라고 말한다.
추천의 글에서 몇 문장을 발췌해 본다.
산만한 사람들이여, 모두 모여라.
여기 우리들의 교과서가 등장했다
- 김중혁_ 소설가
삶은 원래 비선형의 걸음으로 이루어진 것,
흔들림조차 우리의 찬란한 삶의 자욱이다.
- 이연_작가, 드로잉 크리에이터
생각의 벽에 막힐 땐 생각을 산책시키자.
우리의 생각은 사방을 쏘다닌 끝에 주머니가 볼록해져 돌아올 것이다.
- 후나파크 홍인혜_시인, 만화가, 카피라이터
'유익한 산만함'이라는 개념을 만든 머리나 벤줄렌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본래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 인간은 사회적 활동을 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관계를 맺고, 예술을 창조하고, 노동하며, 때로는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산만함'이라는 능력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13면)라고 말하며 우리 인간의 "산만함"을 "정신의 충만함"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집중이 유발하는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진화 연구에 몰두한 "찰스 다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찰스 다윈은 본인의 자서전에서 이같이 말한다.
"나의 정신은 그저 온갖 사실들을 분쇄해 그 속에서 일반 법칙을 끄집어내는 기계가 된 것만 같다. 그 때문에 미적 감각을 관장하는 뇌의 한 부분이 퇴화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 심미적 취향을 잃는 것은 단지 즐거움을 잃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성과 도덕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을 무디게 만드는 탓이다." (32면)
"찰스 다윈처럼 돌연 아름다움에 무감해지는 증상을 '쾌감상실증'이라 하는데, 이런 상태에 빠지면 예술을 경험할 때 아무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33면)
"오직 인간만이 존재하면서도 부재하고, 떨어져 있으면서도 연결되며, 능동적이면서도 수동적일 수 있다. 우리는 몽상에 빠지고, 갈팡질팡하며, 쉽게 산만해지기에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좇지 않는다. 또한 몹시 가혹한 상처를 받았더라도 이를 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다." (41면)
산만함은 인간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비밀 병기 같은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왜 사소한 것, 대수롭지 않은 것을 원할까?
"16세기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선형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면서, 자유롭고 불확실한 사유 속에서 오히려 통찰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폭넓은 주제에 대해 써 내려간 <수상록>에서 우리는 그의 사유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오늘은 새벽에 시작한 독서를 오전 독서로 이어서 하고 독서기록을 남긴다.
모처럼 새벽시간의 긴장에서 벗어나 책을 읽다 딴생각에 빠지다 잠시 졸기도 하고 다시 책을 펼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요즘 시대에는 초집중을 원하는 시대, 결과를 내야 하는 일에 몰두하는 게 미덕인 시대.
산만하고 느긋한 것은 게으름이라는 잣대로 비난하는 시대.
나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브런치 스토리에 "느긋한 몽상가"를 꿈꾼다는 자기소개 문장을 사용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소개에서 그 문장을 지웠다.
뭔가 성실해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틀에 "느긋한"과 "몽상가"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의 본성은 그것을 원한다.
현실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기에 "느긋한"을 추구한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거품처럼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사람이기에 "몽상가"라는 단어가 끌린다.
나는 오늘 아래의 문장에 힘을 얻어 다시 브런치스토리의 자기소개글을 고친다.
사유나 지성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고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부유할 때,
프랑스인을 이를 몽상이라 한다.
그러나 영어에는 이를 표현할 만한 단어가 없다.
_ 존 로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