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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과 테이블] 꼼짝없이 또다시

[보고, 10분, 사유]

by 윤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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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겨울다운 겨울이 된 걸까.

서리가 제법 두텁게 얼었다.


유리테이블 위에 단풍은 꼼짝없이 간밤에 내린 서리에 붙들렸다.

동그란 나뭇잎 액자, 혹은 알록달록한 단풍잎 식탁보를 씌운 듯 보인다.


누군가는 예쁘다고 사진을 찍는다.

누군가는 청소를 위해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뜬다.


꼼짝없이 물세례를 받고 이별의 순간이 올 테지.

분명 테이블 밑으로 눈물 한 바가지 쏟을 테지.

나는 차마 그 순간이 오기 전에 등을 돌린다.


나뭇가지에 단풍잎이 남아있는 한

이들은 밤마다 재회하고

아침이면 이별을 반복할 테지


결국 단풍나무의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꼼짝없이 또다시 1년을 기다리겠지

꼼짝없이 고개 들어 나무만 바라보겠지



5개월 만에 다시 돌아온 <보고 십분 사유>입니다.

어떤 사물, 자연, 형상을 보고 10분간 사유하는 생각 연습장입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씁니다.


구독자분들의 사유도 댓글로 덧대어주시면 그 또한 즐겁게 사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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