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을 만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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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81812 늘그래 쓰고 그림
나태주 시인을 알게 된 건 수년 전 광화문 교보문고 옥외광고에 걸린 “풀꽃”이라는 시를 통해서였습니다.
풀꽃 1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렇게 간결하고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은 누굴까 궁금했습니다.
시집을 구입해 읽어 보았는데 저는 풀꽃 3이라는 시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풀꽃 3
나태주
기죽지 말고 살아 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제 마음에 이 시가 뿌리내렸습니다.
잘 살아보고 싶어 졌습니다.
꽃 피우고 싶어 졌습니다.
2016년 나태주 시인을 처음 만났습니다.
첫째 딸의 중학교에 나태주 시인이 초청 강연을 하러 온 것입니다.
시인은 시를 몇 편 낭송하시고 시를 쓰는 삶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죠.
그리고 풀꽃 3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엄마를 잃은 손주를 위해지어 준 시라고 합니다.
짧은 세줄 시에 손주에 대한 안쓰러움과 사랑, 격려가 담긴 시였습니다.
사연을 알자 그 시는 저에게 더 특별해졌습니다.
그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나를 살리고 누군가를 살리는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의 씨앗”을 가슴 한편에 심어 두었습니다.
2024년 국제도서전 강연에서 먼발치에서나마 시인의 말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그해 겨울, 나태주 시인을 만나기 위해 북아트페어 강연을 찾아갔습니다.
강연이 끝날 때 질문 시간이 있었는데 몇 번을 망설이다 용기 내서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저에게 나태주 시인을 다시 만날 날이 몇 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불쑥 용기가 솟았던 거였죠.
“나태주 시인을 만난 후 시가 쓰고 싶어 졌습니다. 시를 배워본 적도 없고 부족한 상태라 세상에 내놓기 부끄러운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시인은 제 질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답합니다.
“저도 부끄러워요. 엄청 부끄럽습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죠. 하지만 시는 세상 밖으로 나와 읽혀야 합니다. 그게 바로 시입니다. 누구나 다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시를 쓰고 있다면 그게 바로 시인이에요. 계속 쓰세요. 계속 써서 세상 밖으로 내보내세요.”
그 말 덕분일까요?
저는 용기 내 세상 밖으로 미숙한 제 시를 내보이게 됐습니다.
다음에 나태주 시인을 다시 만나면 이 시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시인 덕분에 제 마음에 시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다고… 감사하다고…
“시의 씨앗”이라는 시는 2016년 나태주 시인을 처음 만난 후 제 마음을 써 내려가 본 시입니다.
2025년 봄에 솟아날 시의 새싹을 꿈꾸며, 그 전의 시를 매끄럽게 다듬고 그려서 세상 밖으로 다시 내보냅니다.
늘그래
한 시인을 만난 후
가슴 한 켠
남몰래
시의 씨앗 심어 보았다
차디찬 땅 속에서
포기하지 말고
살아나렴
부디
싹 틔우렴
세상을 향해
꽃 피우렴
부디
깊이 뿌리내려
누군가의
씨앗이 되어주렴
희망이 되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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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켠 : “한 편”이 표준어지만 마음속 저 귀퉁이를 표현하기 위해 “한 켠”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