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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Nov 22. 2024

에필로그 - 국토 종주를 마치며

행복한 동행


해냈다. 그래서 행복했다.


행복이란 모두에게 같은 모습, 같은 크기로 다가오지는 않을지라도, 늘 우리 곁에 공기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쉽게  만지고 느끼지도 못한 채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이 행복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행복을 덧없이 흘려보냈는지 모른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무심코 스쳐 지나간 날들이 못내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퇴직을 하고 비로소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 자유인이 되었지만,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까지는 또 많은 방황을 해야 했다. 그 많은 자유의 시간을 진정한 행복으로 치환하지 못하고, 허구한 날 철철 넘치는 자유가 오히려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나는 늘 시간에 쫓겨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일들을 시작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배우면서 차츰 정돈된 시간을 소유하기 시작했다. 점점 정신적인 안정을 찾으면서 내 주위에 흔히 널려있는 행복이 보이기 시작했다. 행복은 저 멀리 산 너머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즐길 줄 아는 것이 행복이라는, 그 평범한 진리를 몸과 마음으로 느끼기까지 참으로 많은 세월을 보냈다.


그즈음, 나를 세상 밖으로 훨훨 날아다니게 한 인연이 생겼다. '열혈청춘'이다. 오랜 세월, 같은 직장에서 한솥밥을 먹은 인연도 인연이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 좋았다. 그 인연과 믿음이 의기투합하여 2022년 11월 27일, 국토종주 시작점인 정서진에서 첫출발을 할 때, 우리는 그 시작을 그 옛날 삼국지의 '도원결의'에 빗대어  '정서진 결의'라 이름하였다. 반드시 이루고 말리라는 강한 의지의 다짐이었다.


한강을 시작으로 금강, 섬진강, 영산강, 낙동강 등 5 대강 종주를 마치고, 동해안길, 새재길과 오천길 그리고 제주 환상길까지 2,000여 Km에 달하는 길을 함께 달리고 또 달렸다.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거친 비바람, 작열하는 햇살과 무더위와 싸우지 않은 날이 없었다. 또, 함께 달리던 동료가 뜻하지 않게 다치는 두 번의 사고도 있었다. 그 모든 역경을 딛고, 정서진에서 첫 페달을 밟은 지 1년 6개월 만에 드디어 국토 종주 그랜드슬램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리가 만난 인연, 멋과 맛


국토 종주 길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잠깐 스쳐간 인연이었지만, 라이더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도 모두가 친구다.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시원한 음료나 간식을 나누고, 혹여 저녁 자리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막걸리 한 잔을 스스럼없이 건네기도 했다. 따뜻한 마음과 푸짐한 인심을 가진 사람들을 기차 안에서, 전국 각지의 음식점에서, 길 위에서 많이도 만났다. 사람 사는 훈훈함이 있어 좋았다. 또, 국토종주 길에서 외국인들도 자주 만났다. 20일 일정으로 우리 국토종주 길을 혼자서 달리던 미국 시애틀에서 온 40대 초반의 여성, 10여 명이서 단체로 라이딩을 왔다는 싱가포르 라이더들, 대만이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 온 라이더들도 만났다. 우리의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해외에서도 상당히 잘 알려졌다는 것을 방증해 주는 그들을 보면서 마음 한편 뿌듯했다.     


국토종주 길은 우리의 멋과 맛을 만나는 길이었다.


동해 앞바다에 떠오르던 장엄한 태양, 바다와 강과 햇살이 만들어 내던 찬란한 윤슬, 새벽안갯속에서 피어오르던 강 줄기와 산 자락, 저녁나절 핏빛으로 물든 강가에서 넋없이 바라보던 낙조, 끝없이 펼쳐지던 나주평야의 황금물결,....... 


천년 고찰 신륵사와 쌍계사, 세종과 효종의 영릉, 공주의 공산성과 궁남지, 도동서원, 담양의 관방제림, 하동십리 벚꽃길과 화개장터, 낙동강 4재, 문경새재 이화령, 비내섬, 을숙도, 제주의 수국 길과 흑룡만리 밭담.....


영산포 홍어, 나주 곰탕, 섬진강 재첩국과 벚굴, 목포 호롱이 낙지, 부산 자갈치 시장과 동해안의 펄떡이던 회.....


지도로 만 보아오던 강들을 따라가고, 짙푸른 바다, 들길과 산길을 가로지르며 아름다운 인연들을 만나고,  멋과 맛을 음미하며 리던 길 위에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우리들만의 추억이 깔렸다.


국토종주 인증서와 메달

고마운 사람들


그동안 계절이 일곱 번 바뀌고, 우리는 두 살씩 나이를  먹어 평균 나이가 예순일곱 살이 되었지만, 몸은 오히려 몇 살이 더 젊어지고 마음 또한 한결 젊어져 있음을 우리는 안다. 페달을 열심히 밟다 보허벅지와 종아리에 근육이 불끈 늘어나고, 웬만한 업힐은 거뜬히 올라가는 나를 발견할 때는 가슴 벅찬 희열을 느꼈. 함께 달리며, 아직은 젊은 육신에 감사하고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즐거움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가까운 길을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먼 길을 가려면 함께 가라고 했다. 공동의 목표를 향해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이었.  길 위에서 우리의 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여유도 생겼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든 내색 하지 않고 늘 우리를 선도해 나가며 무한 힘이 되어 준 열이 형, 늘 웃음으로 분위기를 띄워 준 청이 아우,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과 모든 일정 관리와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도맡아 해준 막내 춘이 아우! 힘든 여정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다툼 한 번 없이 함께한 우리 '열혈청춘'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또, 늦게 합류해서 아직 국토종주를 마무리 못한 萬과 歲, 두 아우도 머지않은 날, 국토종주를 멋지게 마무리할 것을 믿는다. 그때까지 우리는 늘 함께 할 것이다.


또다시 꿈꾸는 길


우리 앞에는 아직도 밟지 못한 수많은 길들이 있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가슴 떨리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가슴에 품고, 아직 밟지 못한 길을 찾아 또다시 떠나는 여정을 생각한다. 섬 투어를 비롯, 국토 구석구석을 더듬고, 더 나아가 해외에서도 함께 페달을 밟을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열혈청춘만세, 우리 여섯 인연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힘이 다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릴 것이다. 국토대종주를 하는 동안, 우리의 화두가 '행복'이었던 것처럼, 그 행복한 질주는 계속될 것이다.


가자, 가자, 가자!


여섯 개의 젊은 심장과 열두 개의 건각이 달린다. 


두 바퀴는 굴러가고, 강산은 다가온다!


열혈청춘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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