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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Nov 18. 2024

천혜의 아름다운 섬, 제주 환상 길 4

('23.6.8.~6.10.)


강행군


아직 해는 중천에 있다. 오늘 일정을 성산일출봉에서 마무리하고자 했으나, 조금 더 달리기로 했다. 타는 목마름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편의점에서 마신 콜라 한 병이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준다. 몸에 수분을 가득 채우고 다시 달린다. 세화해수욕장에 이르니 해는 이미 바다를 붉게 적시고 있다. 오늘은 100km를 훨씬 넘게 달렸다. 무더운 날씨에 강행군을 했더니, 땀에 젖은 엉덩이가 쓰라리고 온몸이 쳐진다. 평소 힘들다는 말을 잘 안 하는 열이 형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민박집을 숙소로 정했다.  모텔에 비해서 시설이 깔끔하지는 않아도 주인아주머니의 친절한 미소가 집에 온 듯 편안하게 한다. 인근 식당에서 매운탕과 소라, 멍게 한 사발씩 시켜 소주와 함께 해치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마지막 날의 아쉬움이 발길을 잡는다. 2차로 피자와 함께 생맥주 두어 잔씩 더 들이켰다. 가뜩이나 피곤한 몸을 술로 적시니, 나른한 기운이 온몸을 파고든다. 기진맥진한 몸을 끌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졌다.


 국토종주 마지막 날 아침이 밝다


눈을 뜨니 창밖이 훤하다. 국토 종주 마지막 날이 밝았다. 5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밖이 훤하니 더 이상 누워 있기가 힘들다. 모두들 앓는 소리를 하며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난다. 한바탕 부산한 채비를 마치고 나니 6시. 어제 계획보다 훨씬 많이 달려서 오늘은 여유가 있다. 그래도 선선할 때 달려야 한다. 한 시간쯤 달려 일찍 문을 연 해장국집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우거지와 선지 해장국은 피로와 숙취에 최고다.


김녕해변. 하얀 모래사장이 드넓게 펼쳐져있다. 너럭바위와 잘게 부서지는 파도, 바람 타고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코발트빛 바다와 잘 어울린다. 휴양지답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백사장을 거닐고 있다. 바다는 말없이 그들에게 평온한 휴식과 추억을 안겨주고 있다.


잠시 휴식을 갖고, 다시 바닷길을 따라 달려 함덕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백사장 끝 소나무 숲에 서있는 빨간 드레스의 여신이 변함없는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그녀와의 마지막 입맞춤으로, 드디어 국토 종주 자전거길 여든여섯 여신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했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던가! 서로 껴안고 눈물이 날 듯한 벅찬 감동을 나눴다. 함께 고생한 우리들의 애마를 치켜들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이를 지켜보던 젊은 라이더가 부러운 듯 진심 어린 축하를 해준다. 언젠가 그도 이런 날이 올 것이라며 덕담을 나누었다. 국토종주를 시작한 라이더라면 누구나 이 순간을 위해 오늘도 힘든 여정을 이겨내고 있을 것이다.

국토대종주의 마지막 함덕해수욕장 인증센터


국토종주 그랜드슬램 인증서


이제 우리는 국토종주 그랜드슬램 인증을 위해 처음 출발한 용두암 인증센터달리고 있다. 길은 바다를 떠나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고, 햇살은 뜨겁게 우리를 괴롭히며 따라오지만 페달을 밟는 발길은 가볍기 그지없다. 콧노래를 부르며 벅찬 희열을 즐긴다.


용두암 관리사무실에서 제주 환상길 완주 인증과 국토 종주 그랜드슬램 인증을 받았다. 인증수첩을 받아 든 순간, 작은 전륜이 스친다. 인증수첩에 기쁨의 입맞춤을 하고, 첫 장부터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한강 아라뱃길 정서진을 시작으로 수없이 찍힌 푸른색의 인증 도장들이 환하게 웃는다.  벅찼던 순간순간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이제 이 인증수첩은 우리 열혈청춘의 가슴에 소중한 추억으로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국토완주 그랜드슬램, 4대강 및 국토종주 인증


국토 종주 인증수첩


해수 사우나의 행복


제주도 마무리 식사를 위해 공항 근처로 발길을 돌렸다. 바다 내음 물씬 풍기는 푸짐한 횟감으로 행복을 자축했다. 7시 10분 비행기 탑승까지는 아직 서너 시간의 여유가 있다. 식당에서 추천해 준 해수 사우나를 찾았다. 해수탕에 몸을 담그니, 짜릿한 쾌감이 실핏줄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든다. 창밖에는 키 큰 야자수가 한들거리고, 저 멀리 바다에는 배 한 척 유유히 떠있다. 하늘엔 눈이 시리도록 하이얀 구름이 수평선을 넘나들고 있다. 더할 것 없이 한가로운 풍경이다. 나른한 졸음이 온다. 눈꺼풀의 무게에 눌려 쪽잠 한숨 자고 나니,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하다. 사흘간의 피로를 씻고, 벗기고, 날려버렸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행복을 실었다. 해가 서서히 서녘으로 가라앉고 있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1년 6개월, 긴 여정을 마친 우리 열혈청춘의 가슴 하늘이 붉은 선물을 뿌리고 있다.

저무는 제주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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