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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Nov 15. 2024

천혜의 아름다운 섬, 제주 환상 길 3

('24.6.8.~6.10)


올레길과 환상길


제주도의 올레길은 21개 코스 425km이고, 환상길(자전거 종주길)은 10개 코스 234km이다. 두 길은 겹치는 곳이 많다. 바닷가 해안이나 산악지역, 일부 섬 지역 등 자전거 길과 별도로 분리된 구간을 제외하면 많은 구간이 겹치면서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나는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걷는 것을 무척 즐겼다. 좀 더 젊은 시절에는 평지를 걷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산을 올라야 직성이 풀렸다. 나이를 먹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고 그 매력에 빠지면서 요즘은 걷기를 더디 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걷는 사람들의 행복을 안다.


우리가 지금 달리고 있는 길은 올레길 6코스이다. 나는 몇 년 전 이 길을 포함해서 몇 개 코스를 직장 동료들과 함께 걸었던 기억이 있다. 제주를 가장 깊게 만지고 호흡할 수 있는 순간순간이 그저 행복했다. 억을 더듬으며 달리다가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을 만나니 반갑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던진다. 두 발로 걷는 그들은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가장 원초적인 '달팽이의 느림'을 선택한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만난다. 비행기로, 자가용으로, 버스로, 자전거로, 때로는 두 발로 걸어서...... 어느 방법이 낫다고 우길 수는 없다. 각자의 취향과 상황에 따른 선택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각자 나만의 속도로  세상을 만나고, 그 속에서 나의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잠시 멈추고 서서 찬찬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안다. 우리 열혈청춘의 선택은 달팽이보다는 빠르고, 자동차보다는 느린, '두 바퀴'로 만나는 세상이다.

제주 올래길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추억


표선해변을 지나  달린다.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나는 지금까지 얼추 열 번 정도는 제주에 온 것 같다. 내가 맨 처음 제주에 온 것은 신혼여행이었다. 대부분 우리 대가 그랬듯이,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 내던 그 시절, 제주도는 신혼여행지로 가장 사랑받던 곳이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제주도 조차도 호사였던 시절이었다. 제주공항에 첫발을 디딘 순간, 야자수가 늘어선 거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해외는 고사하고 비행기로 바다를 건너는 것조차 처음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3박 4일 일정으로 제주 주요 관광지와 해변을 돌면서 퍽이나 많은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여행사 직원이 시키는 대로 우리 부부는 모델이 되어 그가 원하는 포즈를 취해야 했다. 그때  성산포 해변가에서 찍은 사진은 40 년 가까운 먼 먼 옛 얘기를 간직한 채 지금도 우리 부부의 방추억처럼 걸려있다.


내게는 또 하나 성산포 앞바다에 대한 아련한 억이 있다. 지금은 우리 곁에 안 계신 아버지에 대한 억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아버지 팔순을 맞아 우리 부부는 부모님을 모시고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왔었다. 두 분을 렌터카에 모시고  주요 관광지를 돌다가, 점심때가 되어 성산일출봉이 바라보이는 어느 횟집에 들렀다. 육지에서는 흔하지 않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음식으로 취급받는 갈치회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투명할 만큼 얇게 썰어 쟁반에 담겨온 갈치회를 안주 삼아 낮술로 소주 한 병을 다 비우셨다. 어머니는 조금만 드시라고 자꾸 눈치를 주셨지만,   아버지의 술 사랑을 말리지 못하셨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다시 조촐한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는 술에 관한 한 아들한테 지지 않으셨다. 우리 부자는 분위기에 취해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아버지는 술 한잔 하시면 늘 부르 애창곡 '비 내리는 고모령'을 그 특유의 애달픈 목소리로 부르셨다. 시낭송을 즐겨하는 우리 부부는 이생진 시인의 '아내와 나 사이'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낭송했다. 술잔을 들고 행복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시던 당신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하다. 성산포 앞바다 윤슬이 눈물방울로 반짝인다


이생진 시인처럼, 나의 성산포도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날을 생각하며, 이생진 시인의 '아내와 나 사이', '그리운 바다 성산포' 소절씩 읊조리며 달린다.


아내와 나 사이


아내는 일흔여섯이고 나는 여든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중략)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리는 너무나 먼 데서 살았습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 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 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 만

그리움이 없어질 까지.....


바다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에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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